'8강좌절'에 해당되는 글 1건

월드컵 8강 좌절의 충격 여파가 심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몇 년 사귄 여친과 헤어진 다음날의 몽롱한 정신상태처럼 마음속에선 피눈물이 흘러 나오는데 주변에선 너무나 정상적이라 세상에 대한 소외감마져 느껴집니다. 이미 경기후 24시간이 흘렀건만 거리를 나가니 아직도 붉은악마 티를 입고 거리를 배회하는 인간들이 눈에 간간히 보입니다. 축제전야 광란의 여운이 아쉬워 하루 더 붉은 옷을 걸친 이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월드컵을 핑계로 외박한 이들의 어쩔수 없는 어색한 복장입니다. 그들의 행색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금 마음 한구석이 짠해집니다. 

16강에만 오르면 너무도 쉽게 4강에 오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던 언론들의 설레발 속에서 새벽 3시반에 치뤄진 본선 32강의 마지막 경기를 위해 거리응원을 나갔습니다. 당시 너무도 이른 새벽시간이라 지방인 대구에서는 월드컵경기장이 아닌 시민운동장 한곳에서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잘난 SBS의 독점중계권의 돈장난에 월드컵을 보고자 하는 국민들이 피해를 본 셈입니다. 밤을 꼴딱 세우고 경기가 끝나니 날은 이미 훤하게 밝았고 지독한 응원의 함성과 몸부림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었건만, 앞서가는 소녀들의 경쾌한 발놀림을 보노라면 그저 16강에 진출한 대한민국이 모든 것을 다 가진양 기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즐거웠던 순간인지 소녀들의 붉은색 티마져 'ㅋㅋㅋ' 하며 웃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저 대한민국이 정정당당하게 진정한 실력으로 세계무대에서 승부했고 그리고 승리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실로 승리의 기쁨과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꼈던 것입니다. 최근의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교육 등등의 비참하고 부끄러운 현실속에서 오랜만에 당당히 어깨를 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이 월드컵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습니다.
 
시나브로(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대한민국 땅에서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만들고 진실을 삼켜 버리는 일이 다반사 되어 버렸습니다. 몇 년동안 TV를 틀면 가식적이고 부정직한 거짓말과 사기로 점철된 세상이 판을 쳤습니다. 국민들 대다수는 알고도 모른척 눈감았고, 하루벌이가 막막해 애써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쏫구쳐 올라오는 양심의 소리 앞에서 참 낯 뜨거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세계인들 앞에서 이토록 대한민국이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 몇 년동안 대한민국의 '자유', '진리', '정의'는 후퇴했지만 육체로 승부하는 '스포츠'만큼은 강국이란 사실을 월드컵을 통해 강변하고 싶었습니다. 세계인들을 향해 무엇이든 하나라도 세계인들과 견주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게 있다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WBC, 올림픽의 화려한 성적에다 월드컵이라는 스포츠까지 제패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사탕발림에 현혹된 국민들은 정정당당한 스포츠의 실력차를 생각지 못했습니다. 정말 박수를 안보낼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잘 싸워줬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1:2 깨끗히 졌습니다.


속임수가 판치는 현실속에서 진실에 대한 국민적 갈증이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 월드컵을 통해 보았던 거짓 없는 90분의 드라마는 그간 쌓여왔던 한국인들의 사고와 인지의 불일치를 다소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월드컵에선 그 누구도 부정을 저지를 요소가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기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던 국가대표들의 몸과 경기장 밖에서 혼연의 정신으로 응원했던 국민들이 직접 경험한 기쁨과 슬픔의 현장에서 대한민국이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기뻤습니다. 16강까지 가는 동안 정말 오랜만에 한국인이란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거짓없는 승리에 한결 편안해진 마음의 소리(양심)가 벅차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젠 2010년의 월드컵은 한국인들을 떠났습니다. 붉은티는 누군가에는 '포괄적' 빨갱이로 '오해'될 소지가 있기에 하루 빨리 장농속 깊은 곳에 감춰야 될 것입니다. 다시, 거짓말이 진실을 잡아 먹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성룡 선수의 실수를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진 것 같습니까?' 라며 경기후 SBS기자가 허정무 감독과 이청용 선수에게 던진 멘트처럼 이젠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 저주의 굿판을 벌이기에 바쁜 지난 몇 년간의 대한민국의 현실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월드컵이 끝난 한국, 이젠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블로그 이미지

뒷골목인터넷세상

BIZ(Backstreet Internet Zealot) World 썩어빠진 뒷골목인터넷세상에서 나의 포스팅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