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호주의 제임스 휴이시란 주심의 오판이 어제오늘일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당시 헐우웃 액션을 선보였던 안톤 오노를 두둔하고 김동성에게 실격처러하였던 전력이 있던 친굽니다. 그런데 한국대표팀과 무슨 악연이 있는지 8년이 지난 현재 또다른 한국인 희생자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올림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선수와 코치진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너무나 가슴 아픈 상처를 준 것입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며 심판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심각하게 생각들 하시리라 믿습니다. 김연아 선수 역시 일본에 우호적인 심판진 때문에 많은 고생이 있었던 전례가 있었습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실력과 배짱으로 편파판정 시비 자체를 없애버린 선수였기에 더욱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금메달을 잃어버린 분노가 중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겠지만, 중국보다 심판이 진짜 나뿐놈입니다.
정말 슬프게도 빼앗긴 금메달을 다시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는 ISU가 인정한 베테랑 심판들만이 배정돼 주심 1명과 부심 4명이 한 조를 이룬다. 이때 주심은 판정 여부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으며, 부심은 상황에 대한 설명만 할 뿐 주심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상기 기사인용)고 합니다. 절대적 권력의 횡포가 잘못 사용될 경우, 다시 되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이후 스포츠중재 재판소에 이의제기를 신청하고 향후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또다른 제2의 한국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이 만들어 지지 않도록 환기시키는 일뿐입니다.
시선을 올림픽에서 국내로 잠시 돌려봅시다. 지난 2년간 권력자의 잘못된 횡포로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았고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멍청하거나 혹은 의도한 것이라면 정말 사악한 주심의 오판에 대한 억울함 이상으로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법집행과 정치행위가 국내를 점령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국민들은 직접 피부에 와닿을 국내현실 상황보다 3인칭 구경꾼으로 참여한 올림픽의 오판에 더 열받고 흥분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다시금 교훈을 얻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심판의 자질과 판단의 중요성에 대해 이 글을 보시는 모든 이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행한 단한번의 실수나 고의는 '오해'로 웃고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는 이도, 법집행을 하는 이도, 또 사회지도층 행세를 하며 유세부리는 이도 제임스 휴이시가 보여준 오판을 행한 적이 없는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반짝 열폭하다 이미 업질러진 물이라며 언제 그랬냐는 둥 사그라들고마는 나약한 국민들도 각성해야 할 때입니다.
제2, 제3의 한국 피겨대표팀의 안타까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신나간 심판들을 발본색원하여 잘못된 권력행사를 더이상 휘두르지 못하게 이 기회를 빌어 IOC에 제대로 제소를 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원성을 들려줄 차례입니다. 이젠 정말 국민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될 때입니다.
중국이란 나라는 근 반세기정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뗏놈'으로 애써 무시당해왔던 나라입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시기동안 역사적으로 중국은 대국으로 숭배받던 강자였습니다만, '자유주의'를 택한 대한민국과 '공산주의'를 택한 중국의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라 북한과 동급수준의 나라로 격하되었음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아무리 거대한 나라라 하여도 결국 하나의 찌질한 '공산주의국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인권이 짖밟혀도, 독재가 나라를 좀먹어도 그져 명목상 '민주주의'란 탈을 쓰고 있다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승리자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계정세를 양분하는 공산주의의 몰락과정에서 자유진영의 틈에 발을 담구고 있던 대한민국은 승리자의 쾌감을 맛보게 됩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성숙한 서구열강의 민주주의의 정도와는 체감의 차이가 분명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정치의 주류발판에 기댄 덕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대를 살아온 많은 노인분들은 아직도 성조기에 열광하며 빌어먹으면서라도 살게 해주는 기득권 정치에 감지덕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발 물러서 전체를 볼 수 없었던 이데올로기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의 편향된 정신과 마음은 딱히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도 여유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산주의 국가 '중국'을 삐딱하게 볼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질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란 나라는 전봉건시대 동안 수천년 부패한 탐관오리와 토후세력들의 심각한 인민착취에 대응하여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기치를 들고 생겨난 인민(국민)에 의한 정부였습니다. 일부 기득권력의 억압과 착취를 현실적으로 타파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자본론을 기술한 사회주의의 대표적 인물, 마르크스 역시 당대 중국사회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만, '개혁개방'을 통한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이 현대의 자본전쟁에서 멸망한 마르크스 이론을 뛰어 넘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인권을 탄압하는 중국정부의 무식한 작태가 바로 '공산주의'의 전형적 행태라고. 하지만 언론에 알려진 행복의 수준이 대한민국보다 높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충격에 휩싸이게 합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당대 최고의 인권국가로 칭송되고 있는 미국조차 흑백차별이라는 극단적 인간차별론이 마틴 루터킹 목사에 의해 시정된지 불과 몇십년전이었습니다. 아직도 근원적 인종차별론은 미국사회의 어두운 뿌리임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인권의 싹을 틔우기 전의 나라, 미국이 세계국가 넘버 원자리를 위협하는 중국을 경계하기 위해 알량한 '인권'을 들먹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애써 무시하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론적 배경의 우수성을 너무도 쉽게 '이상주의'로 치부하고 있진 않은가요? 나날이 증가되고 있는 빈부의 격차나 기득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괴리가 대한민국 사회에 먹구름으로 다가오고 있는 현실의 난제에서 현실의 대한민국은 사라진 '이데올로기'에 향수를 느끼며 그시절을 음미하며 감상에 빠질 때가 분명 아님을 심각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거대한 두 진영의 치열한 전쟁뒤 살아 남은 것은 또다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반복되는 역사의 억압된 굴레입니다.
필자주 -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이라면 최소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관련된 책들은 반드시 한번쯤 정독하시길 바랍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당신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랜기간동안 한상률 전국세청장에 대한 수사의지가 없던 검찰의 한명숙 총리 조사를 보면 단적으로 심각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에 대한 한국정세의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일부언론의 무차별적인 사건보도는 '아 다르고 어 다른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우월지위에서 공적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거대언론사의 뉴스보도만으로도 정치인을 살인할 수 있기에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정보의 진실성을 따질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운치 않은 뉴스입니다. 검찰은 그간 정치권력이 개입되지 않은 공정한 수사라 주장하는 상황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을 최종적으로 죽음으로 몰고간 '빨대'를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언론플레이가 절대 없다고 말하면서 결과론적으론 혐의사실이 언론사를 통해 먼저 공표되었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비열한 검찰수사 상황을 지켜보아온 한명숙 총리측에서는 '묵비권'이라는 마지막 카드로 명예를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세속화되고 타락하는 일부 교인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종교조차도 정치와 결탁하여 이렇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는 현실에서, 사람이 곧 하나님이라는 절대진리를 잊어 버리지 않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아직도 배가 고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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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따르면, HCU는 국가 예산이 투입된 핵심 기술이라 외부로 이전하려면 지식경제부 장관 승인이 꼭 필요한데 이 또한 무시됐다”고 지적했다고 밝히며 도주한 중국인 J씨는 지병을 이유로 재입국을 거절하고 있는 상태여서 수사진행이 어렵다고 한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찹착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십억의 국가재산을 지원하여 탄생한 국가 핵심기술이 산업스파이에 의해 유출되었습니다. 미리 징후를 파악하고 재빠른 사건처리로 핵심유출자를 확보했으나 경기도 지사의 입김이 산업스파이의 범죄를 도운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신나간 정치검찰과는 달리 오랫만에 일선에서 검찰 본연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만, 권력자의 입김 한마디에 범죄용의자를 풀어준 꼴이 되어버렸군요. 수십억의 국부유출도 안타깝지만 더욱 슬픈 현실은 쌍용차 사태로 밤잠을 설치는 불쌍한 노동자들입니다. 얼마전 한솥밥을 먹었던 노동자들끼리 먹고 살기위해 치고박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한반도의 서쪽에 위치 중국과 인접한 지리적 여건을 이용하여 중국과의 교류확대로 경제파이를 위해 굽신대는 경기도의 입장은 이해못할 바는 아닙니다.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 질수록 경기도의 지역발전이 확대될 것이나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족지혈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산업스파이를 도운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라도 필요없고, 법과 원칙도 필요없는 황금만능주의와 지역이기주의에 사로 잡혀 버렸습니다.
산업스파이를 도운 김문수 경기지사나 낼름 권력자의 출금해제 요청을 받아들인 국가권력 기관이나 한심하긴 매한가지입니다. 공산주의의 씨가 말라버린 현재에서 아직도 이념적 간첩에 목매어 국민들을 희롱하기 보다 경제적 국익적 관점에서 나라의 부가 유출되지 않게 산업스파이나 제대로 잡아 들이는 능력있는 공안기관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렇도록 허술하게 간첩행위자가 도망가게 내버려 둘 수 있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경제를 살리자'가 이명박 정부의 모토입니다. 빈부격차가 천양지차 벌어지고 있건만 아직도 맘 좋은 국민들은 참아내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하나 비록 내가 안가졌지만, 국가재산이 국내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원칙도 법도 없이 국부를 해외로 퍼주기만 한다면 그때도 과연 '허허허' 소탈하게 웃을 국민들이 몇이나 될까요? '인천공항' 매각건도 김문수 경기지사의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겝니다. 정신들 제대로 차립시다, 이 썩어빠진 정치인들아!
주요 내용은 중국의 한 지방 호텔에서 성폭행을 시도하려는 관리들을 살해, 상해를 입힌 여성에 대한 중국네티즌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여주며 기사말미에 엄격한 권력사회인 중국의 인권과 언론자유화에 대해 중국내 민주투사의 이야기로 다음과 같이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중국공안(경찰)은 사건 즉시 자수한 여인을 '과도한 자기방어'로 살인죄로 기소하려 하였으나 사건의 전말이 인터넷을 통해 중국전역으로 확산되며 그녀를 구속한 공안의 수사행태에 대해 비난여론이 들끓으며, 전국의 유명한 인권변호사들이 그녀를 위해 무료변론에 나서자 최근 검찰에 불구속 송치하였습니다.
일부 관리들의 부당한 요구에 정당방위로 맞짱뜬 이 여성은 지금 중국내부에서 '여성영웅'으로 부각되고 있고 타락한 공무원들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 지고 있습니다. 힘없고 빽없고 가진 것 없는 한 종업원이 어떻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관리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중국인들이 찬사를 보내며 '영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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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2006년 대학원에 다닐때 중국인 교수와 스터디 모임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터디 진행중 자유토론 시간때 학생중 한명이 교수님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흥분해서 질문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교수님왈 "사실 중국인들은 거기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아예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단지 징기스칸이 중국의 역사이듯이(몽골사람들이 들으면 뒷통수 잡고 쓰러지겠다.) 지금 중국땅에 고구려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역사로 보는것도 틀린말은 아닌것 같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적은 없다."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때 우리들은 뭔가 시원스럽게 반박을 하고 싶은데 부끄럽지만 딱히 아는게 없어서 논리적인 답변을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가슴에 걸립니다.
필자도 동북공정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어진 상태에서 우연히 고구려 연구회 이사장이신 서길수 교수님이 강의한 <역사특강 숨은그림찾기 : 고구려X파일>이란 프로를 보고 다시한번 우리 고대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는 증거를 알았으면 하면 바람으로 서길수 교수님의 강의를 바탕으로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중국의 주장-
중국이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3가지 이다.
1. 고구려는 중국땅에 세워졌다.
2.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도지사 개념)
3.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왜 중국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사실인지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답변을 제공한다
1. 고구려는 중국땅에 세워졌다?
중국의 주장: 고구려가 한나라 현토군 땅에 세워졌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역사다
반박1)추모(주몽)이 세운 고구려국은 한나라 현토군 아래있던 고구려현과는 다른 국가였다. 현토군에 고구려현이 있었던것은 사실이나 주몽은 졸본부여에 고구려를 세웠다. (다른곳)
시조 추모왕(주몽)께서 처음으로 기틀을 세우셨다...비류곡(沸流谷)홀본(忽本)(졸본) 서쪽에서 산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 -광개토대왕비-
유리왕이 오이와 마리에게 병하여 군사 2만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양맥을 쳐서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진군하여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공격해서 차지하였다. -삼국사기-
반박2)"중국이 주장하는 현토군의 고구려현은 중국땅이 아니라 옛조선(古朝鮮)의 땅이다."라며 설명해도 무조건 우기는 중국인이 반응: 옛조선? 그것도 중국역사다. 그 증거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도 여기에 대해서 명쾌하게 반격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 중국의 고대역사서인 '사서'에 기자가 은나라의 도하가 다했으므로 조선을 도망갔다. 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 말인즉 조선이란 나라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 기자가 도망 갔을것이 이치가 맞지 않는가! 즉 기자가 조선에서 왕을 했다해서 조선이 중국역사가 되는것은 아니다. 이문제는 마치 후지모리(페루 출신의 일본계 이민2세. 1990년에 페루 대통령에 당선)가 페루 대통령이 되었다고 페루가 일본역사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2.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
이 문제는 조공과 책봉과 관련된 문제인데 그렇다면 신라, 백제, 왜, 돌궐, 월남등 주변 국가들도 중국의 지방정권이란 말인가. 사실 고구려가 중국에 가장 조공을 많이 했던 왕은 장수왕으로 장수왕때 고구려는 가장 막강했을 때이다. 이것을 단지 조공 문제로 볼게 아니라 외교문제로 봐야 할것이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을 비롯해 육지와 바다에서 도합 20개국과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다.)
반박1)중국의 역사기록 - 해동삼국(海東三國: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의 옜날 사서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해동삼국이라고 해서 한국사로 인정했다.
(당나라)고종은 이미 해동삼국이 오래전부터 원한이 맺혀 서로 번갈아 가며 공격을 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구당서 열전 신라국-
한국의 역사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 고구려본기, 백제본기, 신라본기가 기록되어있다. 중국의 그 어떤 역사서에도 고구려본기가 없다는 것만 봐도 고구려는 명백히 한국의 역사이다.
반박2)광개토대왕비
현재 광개토대왕비는 중국이 방탄유리를 씌우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이유는 광개토대왕비가 고구려가 중국역사라는 완벽한 증거인데 유랑민족(한민족)이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며 폭파시킬 위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호 감시중이라고 우긴다. 중국인들이 광개토대왕비가 중국역사라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한자로 쓰여졌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영어로 쓰여진것은 다 영국역사인가? 터무니없는 말이다.
만약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면 이것은 반역행위가 되는것이다. 즉 광개토대왕비야말로 고구려가 강하고 독립된 자주 국가였음을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물인것이다.
반박3)독자적인 연호사용
고구려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연가 :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영강 : 영강7년
건흥 : 건흥5년명 석가삼존불광배
오히려 고려, 조선에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 못했고,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이 들어서고 나서 처음 연호를 사용하였다.
반박4)고구려는 하늘에 제사지냈다.
고구려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그것을 동맹이라 하였다.
동맹: 고구려에서 매년 10월 모여 국정을 의논하고 가진 제천의식
중국은 자기만 하늘의 아들이라 하고 하늘에 제사지낼 수 있다고 규정했다. 주변 제후국은 제후국의 부모인 종묘(宗廟)와 땅과 농사의 신인 사직(社稷)에만 제사 지내도록 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예기-
고구려가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것은 그만큼 독자적인 천하관을 유지했다는것을 뜻하며, 하늘에 제사지내는 나라는 절대 지방정권일 수 없다
반박5)고구려때 중국역사
고구려 28대 705년(BC37년~AD668년)- 한(234년): 서한, 신, 동한
삼국시대(60년): 위,촉,오
진(153년): 서진, 동진
5호16국(137년): 5개 북방민족의 16개국
남북조시대(169년): 남조(송, 제, 양, 진)
북조(북방민족)
수(38년)
당(50년)
3.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고구려인은 중국에 흡수되지 않았다. 서길수 교수님이 이런 물음을 들었을때 과연 중국이란 나라가 그때 있었던가 하고 반문하셨다 한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줄인말이다. 청나라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세워졌다가 오랜 내전끝에 공산당의 승리로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선포하였다. 즉 중국이란 나라는 1949년 10월 1일 생긴 나라이다.
고구려 멸망후 고구려땅에 세워진 나라들을 살펴보겠다.
국가 | 민족 |
발해(699~926, 228년) | 발해족(고구려후예) |
요(907~1125, 210년) | 거란 |
금(1115~1234, 120년) | 여진족(발해의 후예) |
원(1206~1368, 109년) | 몽골 |
명(1368~1662, 294년) | 명+여진 |
청(1616~1911, 297년) | 만주족(여진의 후예) |
일본, 러시아의 진출(1911~) | 실질적 권력행사 |
만주국(1932~1945, 13년) | 만주족 |
이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고구려 멸망후 중국의 한족이 제대로 중국의 동북지역을 지배한 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어떻게 고구려가 멸망후 고구려인이 중국에 속하게 되었단 말인가. 단지 멸망한 고구려 유민들은 계속 그곳에서 살았을 뿐이다.
중국이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3가지 이다.
1. 고구려는 중국땅에 세워졌다.
2.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도지사 개념)
3.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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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소년 2009.03.29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구려는 우리 역사다. 짱깨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우리 꺼다. 진실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다. 지금 위에 친중파 놈들아. 그렇게 중국이 좋으면 중국가서 지네나 먹고 살아라.
자기 나라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르는 놈들은 쓰레기다.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함부로 못하는 이유가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1위인 한국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그렇게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는게 우리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있고 고구려의 후예라는 역사가 있기에 그런 건데 그딴식으로 우리역사가 짱깨 꺼라고 하는 놈은 이 나라에 있을 가치가 없다. 지금 여권 들고 중국으로 빨리 날라라. 그리고 누구에게 한국인이라고 하지 마라. 니들은 스스로 한국인이 되길 포기했으니까 그냥 떠돌이 국적도 없는 놈들이 되는 것이다. 일본이 좋으면 일본가서 일본개잡놈 새끼들 똥꾸멍이나 빨아라. -
통일소년 2009.03.29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우리에게 한시라도 급한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저지하고 빨리 북한과 관계를 좋게 개선해서 통일을 하고 간도의 조선족자치구도 흡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육로로의 교통을 확대해 철로를 만들어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쩌면 미국을 넘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근데 통일은 커녕 이제껏 노무현 김대중 두 대통령이 엄청난 돈을 들여 성공한 남북 관계를 이명박 현 대통령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뿐아니라 더 악화시키고 있다. 대략 60조의 돈을 들여 만든 남북 관계를 한 순간에 무위로 되돌려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든 것이다. 그 비용이 아무리 많았다고 해도 전쟁으로 인한 피해보다는 훨씬 싸다. 경제 대통령이라면 경제를 살리는 데에만 힘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바라는 것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 대통령이 잘못된 정책을 한다는 건 아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솔선수범을 보이며 애쓰는 모습은 좋다. 하지만 너무 그것에만 신경쓰다 보니 다른 것에 좀 소홀한 것 같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절실히 원하는 걸 해주었을 때 지도자를 진심으로 잘 따르는 법이다. 이점을 수용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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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Whalee 2009.03.29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논리적인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근데 댓글중에
정말 개념을 밥말아 드신 분이 있는거 같아서
참 안타깝네요
그렇다고 제가 개념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오해는 마시고..
고구려와 중국역사 얘기 하는데
천왕이 왜 나오는지..-_-; 쩝..
어쨋든 잘 보고 갑니다^^ -
지리학박사 2009.04.08 0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중국"이라는 지명을 1949년에 쓰여진 것이란 말은 아주 훌륭한 업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지리학자나 역사학자 그 누구가 "중국"이라는 것을 1949년 이후의 지나 대륙을 지칭한다고 딱 잘라 말합니까? 이게 바로 우리 역사의 문제점의 하나입니다.
도올 김용옥의 논어집주라는 책을 보십시오. "중국" 문명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자가 살아있을 당시에 "중국"이라는 지명이 없었다고 해도 아무리 지리학박사인 제가 여러 한국의 지리학 교수들과 역사학 교수들에게 말해도 믿어주질 않습니다. 김용옥 박사의 논어집주를 읽어보십시오. 박영효가 조선 통신수신사로 왜로 갈 때 처음 들었던 '일본'이라는 지명이 마구 쓰여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왜"라는 지명으로 쓰여던 그 곳이 "일본"이라고 마구 씁니다. 즉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지명이 고려 조선 시대에 쓰여지는 꼴입니다.
그럼 다시 이런 이야기를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나랏말쌈이 중국에 달아... (주석) 중국에 황제 계신..." 이라는 훈민정음 운해 서문을 말입니다. 아직도 고등학교에서는 "중국의 황제가 남의 나라(조선) 사람들의 발음이 달라 애달파..."라고 하면서 역사 왜곡을 당연히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의문이 드셔야 합니다. 왜 남의 나라 황제가 남의 나라 말에 대하여 그렇게 고민하는 지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 말대로 중국이라는 지명이 당시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럼 그 중국은 무슨 뜻인가를 말입니다. 즉 중국은 '나라 가운데'라는 우리 말이며, 나라 안에 황제 (세종) 께서 나라가 얼마나 컸기에 백성들의 말이 그렇게 달라 글자 (한자)와 서로 맞지 않아 고민했다... 라는 뜻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믿기질 않겠지만 "명사"라는 중국 역사서를 보십시오. 특히 "만력의 역"에 대한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임진왜란이 실제로 벌여진 곳이 어디 인지 한 번 보십시오. 또한 선조실록을 보아도 왜란시 등장하는 지명의 반 이상이 중국 대륙의 양자강 일대이며 지금도 그 지명이 상당수 남아 있습니다. 제가 박사 되기 전해 머리 싸매고 다 조사한 내용 입니다.
이렇게 공부하고 나름대로 밝혔더니 저보고 나의 지도 교수나 심사 교수들이 "미쳤다"라고 합디다. 모든 증거와 역사서를 다 보여주었는데도 미쳤다고 하면서 졸업시켜 줄 수 없다고 합디다.
소위 우리 역사의 삼국 시대에 등장하는 지나대륙의 모든 국가들은 소위 "제후국"들입니다. 즉 누구에 대한 (천자나 왕이라는 국가가 있어야 존재하는 국가들입니다) 제후라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조잡하게 공부하시지 말고 저처럼 한 십년간 완전히 미친 듯이 중국의 사서나 우리 역사서를 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지리학박사2 2009.04.08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때 한 백년 전에 독일의 유명한 지리학자가 실크로드를 탐방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크의 어원은 "신라어"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독일 지리학자가 마치 오늘날 한반도로 온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여 어떤 역사지리 교수가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떤 대학생이 실제 그 독일 지리학자의 여정을 그린 지도를 보이면서 그 지리학자가 실크에 대한 어원을 조사할 당시에 지나 대륙 천산 남로 근처에서 했으며 한 번도 한반도와는 관련없다 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대학생 그 강의 디이 받았으며 교수라는 직위의 막대한 권한 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한 때 지나대륙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어느 도시가 한반도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 다라니경의 종이가 그 도시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한 20년 전에). 그러나 한국에 있던 버러지 같던 역사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중국의 그 도시까지 찾아가 "이런 개같은 짱개들아 그런 역사 왜곡을 중단하라"고 진짜 시위까지 벌였다고 합디다. 그리고 케이비이에스인가 이비에스인가 당시 굴지의 역사 탐방 방송에서 이 것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오묘한 것은 중국의 그 도시의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우리 나라 굴지의 방송이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 돈 쓰면서 그 중국 도시의 중국인 교수들과 학자들의 주장을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즉 한 때 그 도시가 신라의 수도 였다는 엉뚱한 주장 이었습니다.
이 "신라"라는 말이 문제입니다. 즉 오늘날 "차이나"라고 영어식으로 발음되는 것은 실제로 서반어식으로 표현하면 (즉 라틴 계열의 언어를 표현하자면), "신나"가 된다고 합니다. 즉 오늘날 중국이라고 하는 곳이 바로 "신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왕건으로 인하여 "고려"라는 것을 우리의 또다른 국호로 달고 살듯이 조선이 신라를 기원으로 했던 여진족에게 대륙에서 쫓겨난 이후에 '신라, 신나'가 대륙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고려라는 국가가 원래 대륙의 천자국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고려가 없이는 신라의 역사 또한 없기 때문에 중국이 저렇게 다시 자신들의 천손족 국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
지리학박사3 2009.04.08 0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케이비에스 아침방송 중의 기막힌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당시 그 취재 여자가 상당히 관심이 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실제로 한반도에서 방송된 그 사건 이후에 그 여자의 정신나간 말에 그만 관심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즉 중국의 어느 북경 근처의 마을에서 벌여진 일입니다.
그 곳이 바로 "밀성 박씨" 씨족 마을이라는 것입니다. 밀성 또는 밀양 박씨는 아주 중요한 성씨 중의 하나입니다. 이들의 족보를 보면 시작 자체가 "복희씨"와 "소호금천씨" 입니다. 그리고 거의 일만년을 거론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아리따운 아나운서가 어느 중국인에게 묻는 것입니다.
"언제 부터 밀양 박씨가 여기서 살았는가요?"
번역 후...
"우리도 잘 모릅니다. 너무 오래되어서요..."
그러자 한국에서 미친듯이 간 그 여자 기자가 다시 묻는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으면 혹시 일제시대 때 일제로 부터 쫓겨 도망온 조선족 아닙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그 중국인이 약간 얼굴을 찡그리고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 한 표정),
"이 동네가 생긴 것은 저기 저 소나무 숲 보다 더 오래 되며 언제 생긴지도 모를 정도로 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또다시 한국에서 온 미친 년이 다시 따지듯 묻는 것이다.
"아니 얼마나 고생했으면 자기 자신을 잊을 만큼 일제에게서 학대를 받았을 까요? 당신은 조선족입니다."
그 중국인 그 미친 년을 보더니 (어의를 상실한 듯한 표정)...
"여기는 제국군(일제 군대)도 성스럽게 여겨서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지나간 곳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왜 오늘날 중국인들이 그렇게 고구려의 역사를 찾으려 하고 있으며 얼마나 한국이라는 곳이 저렇게 정신이 마구 나간 개털 여자들이 판을 치는 곳인가를 확실하게 아셨을 것입니다.
이게 우리 대한민국 역사 수준입니다. -
지리학박사4 2009.04.08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선덕대왕 신종" 즉 "에밀레 종"을 한 번이라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종의 웅장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디테일에 들어가서도 그 현묘찬란한 정신세계의 표현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아십니까?
어느날 한 때 돈 많은 어느 왜놈이 신라의 어느 "시냇가"에 굴러다니는 것을 거의 1500년 동안 대한민국 사람이나 조선 사람이나 고려 사람이나 심지어 신라 사람도 몰랐다가 자랑스ㄹ런 "왜"놈에게 발견되었다고 이 선덕대왕 신종의 발견사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얼마나 개쪽인지 당신은 얼굴에 피눈물이 나올 지경이 되어야만 합니다. 아니 모든 대한민국에서 선덕대왕 신종을 만든 사람들을 조상으로 여기는 자들은 모두가 다 거시기를 잡고 반성해야 된단 말입니다.
또한 북한산 순수비도 당신은 아실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어느 왜놈 잡놈이 상하이 (상해) 골동품 상에서 구입하여 오늘날 서울 북한산에 세웠다고 어떻게 북한산 순수비가 세워 졌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북한산 순수비의 돌뺑이가 화강암 계통인데 우리 나라 어디에도 비슷한 것 조차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십니까? 또한 상해 그 골동품상은 일제 시대 때 중국 대륙에서 유물을 조직적으로 뺴돌리는 거점의 하나 (여러 곳이 일제의 공식 자금으로 운용되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하루에만 약 4만점의 중국 대륙에서 모여진 역사유물이 일제의 여러곳으로 분산 배치 되었다고 합니다)였으며 이 골동품상의 주요 지역이 오늘날 산서지역과 그 주위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있는 화강암이 바로 북한산 순수비와 똑같은 구성비를 자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북한산 순수비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모든 최신 역사책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 있는데 바로 "창녕 진흥황 순수비"입니다. 왜냐하면 창녕 진흥왕 순수비와 북한산 순수비가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돌맹이 다루던 신라 장인들에게 지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북한산 순수비의 비문은 글자를 전혀 알아보기 힘들 정도인데 비해 이 창녕 순수비는 글자가 너무나 명확하고 문제는 똘뺑이가 전혀 달랐단 말입니다. 그래서 아예 순수비의 사진까지 완전히 없애 버렸단 말이요.... 이 창녕 순수비도 왜놈들이 가져다 주었는데 뭣도 모르는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뭐나게 자기가 발견한 것 처럼 돈 타먹고 놀고 자빠졌다가 나중에 신중에게 문제가 제기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숨겨 버렸단 말이요. -
지리학박사5 2009.04.08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동북공정을 하는 가라고 미국으로 유학을 온 중국의 공산당원이자 역사지리학자인 저의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소상하게 밝히더군요.
"시작은 당신 네 나라 노태우 대통령이 자신의 족보에 쓰인 기원을 밝혀주라고 하는 것과 당시에 당신네 나라 대통령이 들고온 소위 대한민국 역사와 상고사에서 출발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틀 밤을 이야기 한 그 친구와의 대화 내용은 이랬습니다.
"고려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고려라고 말했습니다)는 너의 나라 기록에 의한 강역은 "망할 "당시의 것이다. 네가 말한 장수왕 때 "장안"에 천도한 것을 말했는데 한반도 평양에 마치 당시의 고려의 수도라고 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안"이라는 지명은 오직 "서안, 서경"이라고도 불리우는 "장안"에만 쓰인 천자국의 수도이다. 즉 고려가 당시에 천자국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고려라는 나라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노태우의 족보를 통하여 우리는 천손족 또는 천자족, 또는 선택된 족속에 대한 실마리를 알게 되었다. 우리 중국의 역사에서 지금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왕"의 나라, 천자의 나라 (왕과 천자(황제, 제)는 구별없이 쓰임)에 대한 복원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역사는 "공"이라고 불리었던 "제후국"의 역사로 "패자(패권을 쥔 사람)"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수십번 말한 것은 다음의 것이다) 차이나와 가오리(고려)는 같은 조상이며 한 오리진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북 공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동북 공정을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의 역사의 하나인 고구려를 빼앗기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을 하니까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기가 기억하는 당시 노태우가 들고간 우리 역사통사 역사부도를 기억하면서 삼국 시대의 한반도 지도를 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더군요. 자 봐라. "여기 여진이 한반도의 중간에 있으며 "해"라는 나라가 "한반도의 딱 중간"에 있지 않느냐! 그런데 여진이 한반도에서 살았다는 기록은 어디에서 없으며 이 "해"라는 나라는 천자국이었으며 황하 중류에 위치한 막강한 패자(권력을 쥔)국이었다. 무엇을 더 말해야 너희들 국사 부도라는 것이 엉터리이며 역사 왜곡은 우리 (중국)가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더군요.
또한 이런 말도 하더군요.
"왜 동해라는 지명을 마치 너희 나라는 옛날 신화적 황제시대부터 쓰는가? 동해는 "황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의 지명이다. 동해라는 말자체가 황제국에서 쓰이는 단어이다. 어찌 감히 엉터리로 너희들 것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가?" ...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중국의 역사지리학자가 그렇게 말하니까 죽일 놈들은 진짜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겠더군요.
우리들은 좀 천박하고 쉽게 지랄하는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거의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아주 계획적으로 수백년을 가지고 역사를 바로 찾으려고 하더군요.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중국인으로서 왜 그런 일급비밀에 가까운 것을 나에게 말하느냐?"
그러자
그 똑똑한 중국인은 말하더군요.
"나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학자들은 당신같이 올바르게 아는 자는 당신의 나라에서 핍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당신 네 나라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신 네들의 엉터리 역사책에도 얼마나 많은 예가 있는가? 중국도 또한 여러 문제가 있지만 당신들이 가진 "인물"을 키울지 모르는 못된 습성보다 훨씬 약한 편이다."라고 말하더군요.
성실하게 공부하여 지리학 박사가 되어서 이렇게 겪은 얘기를 나의 은사와 여러 같은 과 출신 교수들 (옛날 선후배)에게 말했는데 "다시는 아는 체도" 안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
지리학박사6 2009.04.08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수십년 동안 연예도 잘 안하고 도서관에서 있는 한문으로 된 역사책이란 왜놈들것만 고고의로 뺴고는 다 읽었다고 자신한다.
바로 "중국"에 대한 지명 문제로 인하여 나의 지도 교수와 몇 몇 역사학자,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통하여 질문을 보내었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들의 이메일을 잠궈버렸다. 그런데 압권은 어느 교수에게서 왔다.
자기 마누라가 중학교 국어 교사인데 내가 수백개의 예시로 보내어준 '훈민정음 운해"의 서문에 대해서는 자기 마누라가 잘 안다고 하면서, "중국이라는 지명이 아주 상고시대에서 부터 쓰인 일반명사라고 다들 아는 사실이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수백 개 중에 단 하나만을 가지고 그것도 수십년을 한문으로 된 글들을 독파한 전문가에게, 대학교 졸업한 "국어 교사"를 들고서는 감히 지리학 박사의 진실된 질문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명 문제에 대하여 여러 차례 다른 것을 수백개의 한자로 된 역사책과 각종 서적을 예로 들면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곤륜산"과 "백두산"이 두 단어 중 조선 중기 이전에 어느 단어가 우리 역사책에 많이 등장할 까요? 정답은 백두산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곤륜산은 특히 소설책에서 항상 등장한다. 거의 모든 한국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산 이름이다. 물론 역사책에도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그럼 "금강산"이라는 지명은 과연 우리 역사서에 등장하는가? 즉 조선 중기 이전에 말이다. 답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금강산 가고 싶어 지랄 안달하는데 웬일인가 말이다. 한문으로 된 역사책 어디에도 금강산이 등장하지 않는다!
"강남"... 제비 처럼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바로 그 유명한 말... 역사책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도 사실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아 글쎄 중국에서 미국으로 온 유학생들 즉 똑똑한 중국인들도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며 제비가 언제 장강의 어느 지역에서 떼를 지어 강남으로 날아가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장관이라고 한다. 하늘을 온통 제비들이 휘덮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강남성이 바로 그곳이란다. 즉 강남이라는 곳이 중국 대륙 한 복판에 등장한다.
우랑직녀... 견우직녀라고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마치 우리 역사의 한 이야기로 자랑한다. 삼국유사에도 우랑직녀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 유학생 모두가 다 이 우랑직녀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중국 유학생들 말을 들어보면 천산 산맥 또는 곤륜산 산맥지역과 관련되며 천손족과 그 지배 속국 민간의 사랑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뭐 이렇게 여러 지명이야기를 가지고 여러 번 한국의 여러 학자들에게 의문을 보내었더니 지금은 거의 이메일을 받는 자가 없어져 버렸다.
완전히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버렸다. 나 스스로가 만든 것인데 누구에게 한탄을 할 것인가?
밀성 박씨의 밀양 군수를 지내신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바로 나의 외증조부의 아버지이시다. 일제시대 때 말이다. 뭐 내가 일본 쪽발이 앞잡이 출신이라고? 그래 얼마나 그 분이 일제 사람들이 알아보아서 시켰는지 당신은 아는가? 그래서 군수 자리에 한 번도 나가시지 않았지만 왜놈들은 명예라고 하면서 천황이라는 자가 봉토도 주었고 각종 선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분은 한 번도 받지 않았지만 봉토는 받는 즉시 다 조선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 분이 돌아가신 후 원래 조선족이 가졌던 버러장머리없으며 인물도 안 알아주는 것은 현재에도 계속 되고 있다. 그 분이 나의 어머니의 먼 친척에게 말씀 한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 아주 어릴 적에 그 방계 친척이 한 말이다.
"내가 온갖 책을 다 읽고 99개의 방을 가득히 책을 쌓아 두었는데 아무도 읽는 이가 없는데 오직 너만 한 번이라도 뒤척이는 구나. 그런데 우리 대황제국이 망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거야. 그것도 또한 우리 조선인이 가진 욕됨이며 무지와 간사한 마음 때문이지. 어찌 우리의 노비들 왜놈들에게 나같은 이가 인정받는지 나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언젠가 부터 우리 조상들의 가장 나쁜 습성은 알다가도 모르게 지켜졌는데 그게 바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야. 두고 봐. 저렇게 쌓인 찬란한 우리네 정신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우리 스스로가 비천한 노예가 될 것이다."
그 분이 죽고 난 후 새로 부임해 온 왜놈 군수가 어느날 일제 트럭을 약 십여대와 일개 중대병력을 끌고와서는 수만권이나 되었던 우리 역사서를 싣고 가 버렸다. 그의 자식들 중 아무도 총칼 앞에 무서워 자신들의 것을 약탈해 가는 왜놈들을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다. 삼일운동이 있은 후 몇 십년간 당시 밀양의 선조들은 일본놈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밀양에 재실 (제사를 지내고 각종 역사서나 족보 등이 있는 서고를 가지고 있음)들을 밤낮으로 지켰다. 그런데 1930년 어느날 왜놈들이 밀양에 있는 모든 양반들을 영남루로 강제로 끌고와 연찬을 벌이는 중에 수십 군데의 재실이 불에 타고 트럭을 동원하여 역사서를 훔치거나 가져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경우 불에 태웠다고 한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렇게 많이 쌓여 있던 역사서를 제대로 공부를 하거나 암기를 하는 전통이 사라져 항상 다시 새로 베끼고 공부하던 풍토가 사라져 다시는 누구하나 복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뭔 할아버지뻘 되는 그 분이 그렇게 똑똑하셨는데 "똑똑하면 일찍 알게 모르게 죽임을 당하게 되고 가문이 멸족 될 수 있다는" 이유 만으로, 또한 그 분 집안이 좀 빈약하다는 이유 만으로 단 한 번이라도 그 재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셨다.라고 하셨다.
얼마나 어렵게 옛날 자료를 구하면서 내가 공부한 줄 아는가?
이것을 그냥 간단히 웃으면서 벗어던지는 게 원래 우리 나라 국민성인 것이다.
수천년을 이 지랄을 했기 때문에 아직도 그렇게 지랄 만 하고 사는 민족이다.
정말이지 우리 나라 도서관에 그렇게 넘쳐나는 취업 준비생들... 돈은 다 어디에 쓰는가?
우리 나라가 이렇다. -
고구려란 국명의 유래 2009.04.08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진짜 몇 년간을 "코리아"란 지명의 유래를 찾으려고 온갖 사서를 다 뒤졌다. 그리고 전혀 엉뚱할 뿐만 아니라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던 곳에서 그 "고구려"란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나중에 '이중재"라는 재야 학자와 "김종서"라는 중앙대 역사 박사이신 분에게서 확인하게 될 때까지 한국의 대학교에 있을 때 아무도 나의 발견을 확인해 주는 역사, 지리학자 교수들이 없었다.
즉 "후한서"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고리국이 구이를 병합하면서 왕망(주몽)이 스스로 고구려왕으로 등극한다는 바로 그 부분이다. 이게 "고구려"라는 지명에 대한 제일 오래된 근거이다. 즉 왕망은 "신"이라는 나라를 세웠지만 "신"이 곧 "한"이므로 "한"나라가 바로 고구려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의 후손들이 사는 도성의 이름이 "한성"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중국인들은 고구려(고려)의 후손들의 수도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제 어느 미친 개독 서울 시장이 '대갈통을 잘라 버린다는 뜻의 '서우얼"이라는 한자명으로 수천년을 이어온 "한성"이라는 지명을 갈아치웠다.
우리가 얼마나 얼이 나자빠져 있는지 아실 것이다. -
어느 교수의 질문 2009.04.08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경주로 과 전체로 답사를 간 적이 있다. 한 20년 전에... 나는 별로 관심도 없는 쪽발이 대학교 출신 지리과 교수라 멀찌기서 근성으로 따라다녔는데 신라의 계곡 (분지), 즉 오늘날 경주라고 불리는 분지가 다 보이는 산록완사면에서 내가 미기적 거리며 천천히 내려가는데 나의 팔을 잡으며 남으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학우들이나 답사 나온 학생들은 다들 버스로 갔는데 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분지를 한 번 보라고 하면서 이렇게 묻는 것이다.
과연 "이 경주가 신라시대 때 백만명이 살았다고 너는 생각하냐?"라고 하시는 것이다.
원래 수백만명이 한 곳에 수백년을 살면 가장 골치아픈 것이 "쓰레기"문제이다. 이것을 또 그 분이 거론하시는 것이다. 당신도 알지만 로마를 상상해 봐라. 로마가 망한 것은 "쓰레기" 때문이며 로마에서 왜 향수나는 것들이 불티나게 태워졌냐하면 바로 "쓰레기 냄새"를 누그려뜨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서양의 학자들 뿐만 아니라 동양의 학자들도 모조리 다 알고 있다. 현재 장안의 가장 큰 문제는 쓰레기를 덮은 표토의 유실로 인한 과거 쓰레기 더미가 노출될 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신라 수도가 천년을 지속되었으며 천년을 쓰레기를 마구 배출했을 것으로 본다면, 쓰레기 더미가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학술재단에서 미친 듯이 이 쓰레시 더미를 동해까지 나가면서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코 찾질 못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그 인솔 교수가 나에게 말한다. "일백만 이상인데 일백만명은 지배계층 수 이며 외국의 상인들과 같은 숫자를 말한다. 그러면 노비만 보더라도 최소한 4백만 명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원래 기록이 최대 4백만 정도 였다고 우리 나라 지지에도 적혀 있으며 지나대륙의 역사책에도 쓰여 있다. 그런데 쓰레기 더미를 찾을 수 없다."
물론 나는 당시에 어느 정도 역사서를 독파한 뒤라 말씀을 드릴려고 하는데 그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뭐 옛날 것이 무슨 소용이여... 현재만 충실하면 되는 것인 지도 몰라." 하면서 피식 웃으시면서 터덜터덜 버스 있는 쪽으로 가시는 것이다.
이 분이 나중에 나의 논문을 제일 거부하신 분이다.
나중에 어떤 때에는 이 분이 이런 말도 나한테 한 적이 있다.
"저기 말야, 황룡사 구층탑인가 하는 그 곳 말이지... 그 곳 지형이 그러한 탑이 설 수 있을 것 같아? 지짓돌 만 나왔지 그 아래 그 무거운 탑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반이 전혀 없단 말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데 말이야 신라 시대 때 황룡사와 똑같은 규모의 절을 지었고 그 곳이 분황사이고 실은 이 분황사가 더 많이 역사책과 당시 신라인들이 중요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엉터리들이 이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3층 규모의 탑도 세울 수 없는 지층을 가진 곳에 9층 탑을 논의하고 있으며 그것을 막무가내로 따르는 정신줄 나간 인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보고는 너는 그렇게 정신나간 놈이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 놓고는 "미쳤다"라고 제일 먼저 말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
백두산 문제 2009.04.08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유타대 학생회 회장이 "왕재필"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분이 자랑스럽게 "독도수호광고"를 학교 신문에 내면서 뭔가 조국 수호의 기치를 들이 밀면서 아주 매국질을 톡톡히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일전에 메탈류지 전공의 박사과정 미친 놈에게 "원래 독도는 분쟁지역이 아니며 "독도수호"라는 말은 잘못되었으며, 원래 영토에 관하여 떠드는 것은 전쟁을 각오해야 될 중요한 책임"이 같은 학교 후배인 그 정신나간 왕재수 필군에게 말했습니다. 그렇는데 미국에 사는 정신나간 동포들과 합세하여 더욱 더 "독도수호광고"를 헛돈 쓰면서 계속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계속 말했죠.
똑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제대로 공부한 사람을 무시하는 게 한국인의 전통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말은 씨도 먹히지 않고 현재 뉴욕이고 엘에이이고 이 독도 광고 지랄판입니다.
그런데 이 왕재수 왕재필에서 "백두산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질문을 보냈는데 전혀 답장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백두산 정상의 반은 중공이 북한을 도와준 댓가로 침탈해 갔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 씨발놈이 대답을 안하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는 전혀 "문제가 없는, 분쟁지역이 아닌" 독도를 가지고 동포들의 돈까지 동원하면서 영자 학교 신문에 선전하고 지랄 난리 빤스입니다.
저는 이 독도 광고 때문에 일본 문부성에서 돈을 많이 주는 직업을 거의 다 되었다가 놓쳤습니다. 같은과 일본 지리학과 유학생으로 부터 추천을 받고 면접만 보면 되었는데 언젠가 부터 저보고는 아는 체도 안합니다.
사실 바로 백두산 문제가 1970년 부터 시작합니다. 그 때 중공에서 공식적으로 북한에 백두산 정상의 반을 내어놓어라는 협박을 했고 우리 대한민국의 중앙정보국과 미국의 중앙정보국이 이런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때 부터 백두산 지역과 옛날 고구려에 대한 역사가 중요시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의 역사학계는 "고구려"라는 나라가 오늘날 동북 삼성이라는 중공이 말하는 지역에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신채호의 고구려의 위치가 만주와 관계되었다는 것이 1980년 후반에 역사학계나 지리학계에서 밝혀진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과 라는 엉뚱한 곳의 신 모씨 서울대 교수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그 신모씨 서울대 교수는 약간 똘아리라고 취급되었지요 당시에 말입니다. 즉 1990년 초까지 우리 역사계의 어느 훌륭한 학자나 교수도 공식적으로 "고구려"를 인정 안했단 말입니다.
고구려의 한 때 만주지역 지배설과 한 때 평양 이었던 "봉천 (현재 심양)"에 대한 우리 역사계의 받아들임은 노태우가 중국으로 가져갔던 우리 국사책에 대한 중국인 학자들의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던 1990대 중반부터입니다.
즉 우리 나라 스스로가 고구려가 만주에 있었다는 것을 주장한 것은 1990년 중반부터 입니다. 알겠습니까?
제 말이 의심이 나면 역사학계의 여러 논문지들이 수없이 많으니 잘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뼈저리게 반성하십시오.
과연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지 말입니다. -
한자로 쓰인 역사책 2009.04.08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아주 우수한 글자인 한자로 기록된 역사책을 일제때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상당수 가지고 있다. 우선 그 역사책을 다 읽은 후에 도대체 중국의 동북공정이 왜 하는지를 깨닫도록 하자. 우리는 한자로 된 기록물을 읽는 수준이 말이 되지 않도록 저급이다. 내가 영어로 영어로 된 논문으로 박사를 받았지만 나처럼 한자를 공부하고 나처럼 많은 중국과 한국의 사서를 독파한 역사계 지리학계 학자나 교수들을 만난 적이 없다. 또한 이 글을 발제한 분 또한 진실로 한자로 된 역사책을 읽었는지 의심이 된다.
원래 읽지 않고 심각하게 수십년간 생각하지 않고 말한 다면 나중의 낭패가 어떻겠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언제나 우리 조상들이 남기신 한자로 된 글에 다 나오는 말이다.
그토록 투철하게 기록을 하신 우리 조상들을 욕보이는 일이 오늘날 그들의 자랑스러운 후손들이 떳떳하게 하고 있다. 즉 읽지를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한자로 된 역사책 중국 것이든 한국 것이든 다 읽고 또한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자기들의 역사적 의미를 적은 논문 (현재 약 1만 정도 된다고 들었음, 20년 전에는 보고서 달랑 2개 였는데)과 대한민국의 일본 논문을 빼기는 역사 논문을 일본 원전을 보면서 어떻게 일본이 적은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는가를 완전히 이해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제가 20년 전에 할 때 10년 걸렸는데 지금 시작하신다면 최소한 30년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부란 게 원래 그런 것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가 반만년이라면서요. 각오를 단단히 하시고 신나게 한자로 된 우리 역사서와 중국의 역사서 부터 읽어보시지요. 남이 당신을 보고 뭐라고 하던 줄기차게 읽어나가 보십시오. 언젠가는 자랑스런 한인이 무엇인가를 당신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며 온갖 거짓이 범람하는 헛된 역사 속에서 진리, 진실이라는 보물을 스스로 캘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중국성화봉송
인류의 평화와 사랑을
스포츠라는 활동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올림픽의
그 뜻깊은 이상은 이제
북경올림픽을 시작으로
더이상 사라져 버렸습니다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기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기(旗).
흰 바탕에 청, 황, 흑, 녹, 적
다섯개의 고리를 겹쳐 놓아
오대주의 평화와 협력에 대한
상징으로 1914년에 쿠베르탱의
고안으로 제정되었습니다.
민족과 국가 그리고 인종을 넘어선 전 인류적인 사랑을 위한 세계의 축제인 올림픽과 그상징,
이제는 지금까지 계승되어오던 아름다운 올림픽의 정신은 세계인의 분노로 바뀌고 있습니다.
또한 무력한 나약한 티벳민족을 보호하기위해 몸빵을 자쳐한 중국유학생 및 중국인들에게 위협당하는 힘없는 약소민국 한국의 경찰들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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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모의 탤런트
반라 상태로 추락사
15일 중국의 인기 배우가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언론보도가 전해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의 CF와 뮤직비디오 등에 출연해 국내팬들에게도 친숙한 얼굴이기에 더 큰 충격을 보이고 있으며 실시간 다음검색순위 1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신체 - 166cm, 47kg
특기 - 노래, 댄스, 수영
수상내역 - 2007년 제15회 한국인기연예대상 외국인 특별상
중국 탤런트의 자살 사건으로 끝날 듯했던 이 사건은 그러나 탄징이 사망 전날 밤 한국인 남성들과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인터넷을 달구고 있습니다. 중국 공안당국은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탄징이 사망 전 실내에서 다투거나 구타당한 흔적이 전혀 없다"고 타살 가능성을 배제한 뒤 "고층에서 스스로 떨어져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나 중국 인터넷에선 유명 연예인이 외국인을 상대로 한 성매매업에 종사했다는 루머가 생기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고 빈과일보는 전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 광저우의 한국항공사 직원숙소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중국 탤런트 탄징은 중국공안의 조사에 의해 자살로 판명되었습니다. 탄징은 4월5일 새벽 3시경 한국항공사 직원숙소 3006호 이모씨 방에 있는 화장실에서 반나상태로 추락해 11층과 12층 사이에 걸려 있었습니다. 부검결과 알콜농도가 정상적으로 취한 상태의 3배나 되며 현장에서는 몸싸움을 벌인 흔적도 없는 것으로 보아 자살로 판명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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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아닌듯 하네요 2008.04.16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글쎄요.. 일단 저도 자살은 아닌듯 한데..그런데 그래도말씀이 지나친 분들도 많네요...
우리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중국 팬들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녀를 알고 좋아했던 팬분들이 있을겁니다. 동기야 어찌되었든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된 분에게 이상한 말들은 삼가했으면 하네요.. 누군가 내가 아는 사람에게,혹은 나에게 근거없는 말들을 한다면 싫고 화나는건 누구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녀의 가족들이 가장 마음 아플때에 위안의 한마디가 아니라도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은 삼가했으면 합니다... -
참나 2008.04.16 2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뭐가 구려서 계속 지우죠?
새로운 기사가 나오면 새로운 기사로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하는거 아닌가요?
왜 계속 사실성 뉴스는 외면한채 주인장 추측만 주입시키고 지우기만 하죠?
중국언론에 뜬 새로운 기사입니다.
블로거 주소로 해서 지웠나본데......다른데 옮겨진 기사입니다...
http://bbs3.worldn.media.daum.net/griffin/do/country/bbs/read?bbsId=C002&articleId=116977&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
현지시간으로
그는 폰락쿤~을 외치는 타이사람이었다.
싱하형이 태국사람이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소룡은 중국사람이지만 싱하형은 분명 태국인이었다.
TIP2) 해외 출장시 탑승권을 발권하려 수속할때 기왕이면 밑져야 본전이니 "앞좌석으로 주세요" "Can I have front seat, please"를 외치자. 보통의 경우 일반석은 만석일 경우가 많지만 비지니스석은 대부분 좌석이 남아 있다. 결국 탑승권수속시 1번 업그레이드 할 기회가 있고 또 보딩시(탑승시) 스튜어디스, 스튜어드를 통해 다시 한번 좌석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3시간 이상의 장시간 비행이 될 경우 한번 노력하면 그 여행이 즐겁다. 넓게 뻗을 수 있는 다리, 좋은 기내서비스와 이쁜 서튜어디스 그리고 충분하게 넓은 좌석공간이 당신의 여행을 더욱 기쁘게 만들어 줄것이다.
-뒷골목인터넷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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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다음(www.daum.net)의 책소개란에 '밥은 먹고 다니냐가 중국에서 왔다?'로 포스팅되어 있는지 중국어과 출신으로 도대체 이게 무슨말일까 궁금해 직접 들어가 보았습니다. 책의 내용을 간략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니라면, 도대체 중화중심주의사상에 입각해서'문안인사'조차도 중국에서 수입해왔다는 황당한 주장인데요.
안녕하세요(강령하시죠?) 안죽고 아직 잘 살아있냐? 무사하시냐는 뜻
건강하시죠? 아픈데 없으시냐, 나이많으신 분들에게 자주 사용
식사하셨습니까? 나이 많으신 분들께 식사시간 전후에 사용
밥은 먹고 다니냐? 나이 어린 사람에게 식사시간 전후에 사용
진지드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의 격상된 말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잘 살아있냐는 안부인사, 무고하시냐는 뜻
잘살지? 잘 살아있냐는 하례인사, 안죽고 살아 있지? 라는 축약표현
중화사상(세상의 중심문화는 중국)에 본인도 모르게 빠져드는 문화사대주의는 분명 배척해야만 할 것이며, 대한민국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성을 이러한 사소한 것에서 부터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뒷골목인터넷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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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서방의 파란만장 일대기
티벳 사태에 대해 '왕서방의 일대기'를 통해 썰을 풀어볼가 합니다.
동네에서 어떤 집에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남의 집안 싸움'이기에 끼워들기를 꺼려하시나요? 만약 동네사람과 동네사람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났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리고 보시나요? 아니면 약자의 편을 들어 주시나요? 지금부터 전개될 '왕서방의 일대기'를 통해 현재 발생한 중국과 티베트사태에 대한 주변국과 강대국의 눈치보기 사태를 살펴볼까 합니다. 이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사실과 과장, 은유와 비유를 적절히 섞은 글이니 가볍게 읽어 보시되 한번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옛날옛날 아주 먼옛날에 왕서방이 살았습니다. 그는 못생기고 욕심많고 배운것 없는 그러나 유수하고 뼈대가 깊은 가문에 돈은 넘치는 노동착취기업가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어느날 100만평이 넘는 그의 땅도 모자라 남쪽 담벼락에 있는 땅도 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옛날 그의 할아버지때는 그 땅도 왕서방네 가문의 땅이었걸랑요. 지금 그땅의 주인은 바로 전처였던 홍씨였습니다.
이혼과 동시에 왕서방땅의 저 밑자락에 있는 허럼한 지역에 자리잡고 '영국'씨라는 돈과 빽이 있는 서양인에게 재가하게 됩니다. 힘없는 홍씨는 영국씨의 보호아래 다른 남자들의 업수여김을 더이상 받지않게 되었습니다. 전남편인 '왕서방'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몇십년동안 뭐빠지게 열씸히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 그 좁은 상가1층에서 시장사람들을 대상으로 은행업과 쇼핑몰로 떼돈을 벌어들여 홍씨네 식구들은 더이상 왕서방의 넓은 가슴팍이 그립지 않았습니다. 아니, 제발 찾아와 재결합하자고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에는 약이 없나 봅니다.
빠른 세월이 지나가고 철썩같이 믿었던 '영국'씨가 귀국한다며 잘살아라고 합니다. 처자식을 팽게치고 도망가네요. 이기회를 놓칠 수 없던 왕서방은 영국씨의 빈자리를 노리고 어느날 떠억 안방을 차지합니다. 홍씨의 자녀들은 이럴수 없다며, 더이상 왕서방은 아버지도 아니라며 반항을 합니다. 하지만, 권세를 가진 왕서방은 그냥 그들을 무시해버리며 왕서방네 집사를 홍씨집에 보내어 감시하게 합니다.
주변의 다른 권세가문들도 모른척 무시해 버립니다. 더럽지만 왕서방 가게의 생산품이 없으면 그들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 왕서방 성격이 지랄같에서 피하는게 상책이라 여겼던 거지요. 할 수 없이 홍씨네는 피눈물을 흘렸지만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어 배놔라 감놔라'할 수 없었던 인근 주민들을 탓하게 됩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홍씨는 다시 왕서방의 재처가 되길 작심하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중국과 홍콩 이야기
왕서방과 대만씨는 실제 형제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집안싸움과 재산분배문제로 가족간의 관계를 끊어 버리게 됩니다. 성질이난 왕서방은 큰형이었던 대만씨 가족들을 집밖으로 쫓아내어 버렸습니다.
대만씨는 분루를 삼키며 집안의 가보들을 챙겨 강 건너에 있는 외딴섬에 들어가 터를 잡았습니다. 왕서방이 콩사탕이라는 종교에 심취해 있을때 대만씨는 경제학을 부지런히 익히고 배웠습니다. 비록 가산은 없지만 집안의 가보를 지키며 선조의 위패를 지키는 뼈대있는 가문이란 걸 입증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했죠. 그래서 몇십년전부터 대만씨 집도 먹고 살만 하였죠.
하지만, 호시탐탐 가산과 가보를 뺏으려는 왕서방때문에 불안해 잠들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이라는 보안업체에 가입하게 됩니다. 요즘도 쉴만하면 막말해대며 위협하는 왕서방때문에 대만씨네 가족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 이야기
왕서방의 성격은 참 다방합니다. 옛날 왕서방내와 친분교류가 있던 동쪽 동네에 한씨가 살았었죠. 한씨네도 참 불쌍합니다. 수천년동안 잘 지내오던 한씨네가 불과 50년전 형제간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돈때문도 아니었고 땅때문도 아니었는데 바로 '콩사탕'이라는 종교붐에 집안이 풍지박살된 것이랍니다.
세월이 흘러 왕서방은 왕서방네 북쪽에 있는 백두산 근처의 한씨들의 땅도 은근설쩍 잡수셨습니다. 아직도 그땅에는 한씨네 아들들이 살고 있습니다만, 왕서방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땅을 먹기 위해 한씨네 아들들을 자기 호적에 넣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을 '조'씨로 바꿔버렸군요. 조씨들은 한씨네 가문의 아들들이지만 한씨에게도 찬밥신세고 왕씨에게도 찬밥신세를 당하는 불쌍한 신세로 전락해 버립니다.
한씨의 선산, 즉 그들의 조상묘가 있는 백두산에는 왕씨가 가짜로 세겨둔 위패들이 가득합니다. 나중에 한씨 아들들인 조씨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자신들은 왕서방네가 아니라 한씨네라고 우길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조치한 것이지요. 이젠 그런 일이 발생해도 법원에서 이길 자신감이 든다고 왕서방은 생각합니다.
중국과 한국이야기
왕서방은 이제 돈도 벌만큼 벌었는데 한가지 소원이 있답니다. 세간 소문에 항상 돈만 많은 욕심쟁이, 머리에 든것없는 스쿠루지, 악덕 기업주 등등 평판이 좋지 못하여 왕서방은 밤마다 눈물을 흘립니다. 그는 조상님들도 대단한 가문인고 자식새끼들도 이미 충분히 키웠으나 유독 동네사람들에게 존경과 존엄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큰 맘먹고 8월달에 동네 체육대회를 개최해 볼까 합니다.
누추한 집안 구석꼴을 동네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으니, 집안 곳곳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있습니다. 왕서방은 이제나 저제나 동네 체육대회 개최일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자신의 집 서쪽 동산에서 기수련장을 운영하는 '티'씨가 반기를 들고 나섰습니다. 왕서방이 강제로 쫓아낸 기수련장의 주인, 달라이씨를 필두로 수련장을 돌려내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답니다. 왕씨가 티씨땅을 강제로 빼앗아 버렸습니다. 왕씨주변의 주민들도 의아해 합니다. 왜 돈많은 왕씨가 티씨 수련장까지 손을 대었을까요? 동네사람들의 소문에는 이미 '티'씨 집안의 수백명의 자식들이 얻어 맞아 다쳤답니다. 왕서방이 사주한 조폭들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왕서방은 중요한 동네체육대회를 목전에 두고 이런 사건이 발생에 영 개운치 않습니다. 집안자식들과 하인들에게 입조심을 당부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웃긴일은 힘과 돈이 있는 왕서방네 일이라 다른 동네의 영국씨도 미국씨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같이 '콩사탕'교에서 만난 '러씨'도 아예 왕서방을 두둔하고 나섰습니다. 당연히 눈치빠른 '일씨'는 몸을 사리고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물건너 호씨도 우려만 할 뿐 특별히 체육대회에 대한 불참선언은 아무도 못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권력과 힘 그리고 돈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써운가 봅니다. 몇몇의 한씨집안의 자제들이 티씨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한씨집 아들들은 가끔씩 티씨네 기수련장주위로 등산도 가며 친목을 다졌기 때문이랍니다.
중국과 티벳 이야기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동네이웃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십니까?
도와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집안싸움이니 끼어들지 않고 구경만 하십니까?
왕서방의 횡포와 폭력이 단순한 왕서방네 '집안의 싸움'이라 여기십니까?
왕서방과 티씨 가족들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데 눈치만 보십니까?
만약 왕서방이 어느날 한씨집안에도 티씨사건과 같이 무단점유하면요?
동네일도 가끔씩 관심을 가지면 보다 더
평화로운 동네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요?
티씨네 폭력사태가 딴집의 일뿐일까요?
그냥 남의 집안문제 탓만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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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이네요 ^^
잘 읽고 갑니다!
우리가 심판관을 내보내지,않는한은 이런상황은 계속될것입니다 !!!!!!!
참 나쁜 생각이네요... 그런 쪽으로 머리가 늘 돌아가시는 분겠지요.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휴이시 심판같은 사람은 절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1094일 남았네요. 휴~~~~~~~ 한숨만
좋은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