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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동북공정을 하기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역사서(교과서)에는  고구려를 다 한국의 역사로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압록강 두만강 백두산 지역의 국경과 관련해서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하였고 이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역사왜곡 논쟁이 불거졌습니다.

필자가 2006년 대학원에 다닐때 중국인 교수와 스터디 모임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터디 진행중 자유토론 시간때 학생중 한명이 교수님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흥분해서 질문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교수님왈 "사실 중국인들은 거기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아예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단지 징기스칸이 중국의 역사이듯이(몽골사람들이 들으면 뒷통수 잡고 쓰러지겠다.) 지금 중국땅에 고구려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역사로 보는것도 틀린말은 아닌것 같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적은 없다."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때 우리들은 뭔가 시원스럽게 반박을 하고 싶은데 부끄럽지만 딱히 아는게 없어서 논리적인 답변을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가슴에 걸립니다.

당시 동북공정이 불거졌을때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흥분을 했었죠. 당시 고구려 발해 관련 드라마들이 많이 만들어 졌고 인기리에 방송되었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았는지 알수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드라마를 만들고 보는것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선 싸움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몇가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도 동북공정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어진 상태에서 우연히 고구려 연구회 이사장이신 서길수 교수님이 강의한 <역사특강 숨은그림찾기 : 고구려X파일>이란 프로를 보고 다시한번 우리 고대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는 증거를 알았으면 하면 바람으로 서길수 교수님의 강의를 바탕으로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동북공정(2002.2~2007.1)은 중국이 동북지역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장에 관한 역사프로젝트이다. 실제 중국은 이 기간에 중국땅에 있는 고구려 성, 고구려 유적지에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안내판을 다 세워놓았다.

-중국의 주장-
중국이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3가지 이다.

1. 고구려는 중국땅에 세워졌다.
2.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도지사 개념)
3.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왜 중국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사실인지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답변을 제공한다


1. 고구려는 중국땅에 세워졌다?

중국의 주장: 고구려가 한나라 현토군 땅에 세워졌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역사다

반박1)추모(주몽)이 세운 고구려국은 한나라 현토군 아래있던 고구려현과는 다른 국가였다.
현토군에 고구려현이 있었던것은 사실이나 주몽은 졸본부여에 고구려를 세웠다. (다른곳)
 
주몽은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그)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  인 것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삼국사기-

시조 추모왕(주몽)께서 처음으로 기틀을 세우셨다...비류곡(沸流谷)홀본(忽本)(졸본) 서쪽에서 산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 -광개토대왕비-

유리왕이 오이와 마리에게 병하여 군사 2만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양맥을 쳐서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진군하여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공격해서 차지하였다. -삼국사기-


반박2)"중국이 주장하는 현토군의 고구려현은 중국땅이 아니라 옛조선(古朝鮮)의 땅이다."라며 설명해도 무조건 우기는 중국인이 반응: 옛조선? 그것도 중국역사다. 그 증거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도 여기에 대해서 명쾌하게 반격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 중국의 고대역사서인 '사서'에 기자가 은나라의 도하가 다했으므로 조선을 도망갔다. 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 말인즉 조선이란 나라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 기자가 도망 갔을것이 이치가 맞지 않는가! 즉 기자가 조선에서 왕을 했다해서 조선이 중국역사가 되는것은 아니다. 이문제는 마치 후지모리(페루 출신의 일본계 이민2세. 1990년에 페루 대통령에 당선)가 페루 대통령이 되었다고 페루가 일본역사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2.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
 이 문제는 조공과 책봉과 관련된 문제인데 그렇다면 신라, 백제, 왜, 돌궐, 월남등 주변 국가들도 중국의 지방정권이란 말인가. 사실 고구려가 중국에 가장 조공을 많이 했던 왕은 장수왕으로 장수왕때 고구려는 가장 막강했을 때이다. 이것을 단지 조공 문제로 볼게 아니라 외교문제로 봐야 할것이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을 비롯해 육지와 바다에서 도합 20개국과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다.)

반박1)중국의 역사기록 - 해동삼국(海東三國: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의 옜날 사서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해동삼국이라고 해서 한국사로 인정했다.

(당나라 고종이 말했다) 해동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은 개국한지가 오래됐고 국경이 나란히 있어 땅이 마치 개 이빨처럼 생겼다.  -구당서 열전 백제국-

(당나라)고종은 이미 해동삼국이 오래전부터 원한이 맺혀 서로 번갈아 가며 공격을 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구당서 열전 신라국-

한국의 역사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 고구려본기, 백제본기, 신라본기가 기록되어있다. 중국의 그 어떤 역사서에도 고구려본기가 없다는 것만 봐도 고구려는 명백히 한국의 역사이다.

반박2)광개토대왕비
현재 광개토대왕비는 중국이 방탄유리를 씌우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이유는 광개토대왕비가 고구려가 중국역사라는 완벽한 증거인데 유랑민족(한민족)이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며 폭파시킬 위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호 감시중이라고 우긴다. 중국인들이 광개토대왕비가 중국역사라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한자로 쓰여졌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영어로 쓰여진것은 다 영국역사인가? 터무니없는 말이다.

414년 고구려때 세운 광개토대왕비에는 시조 추모(주몽)은 "하늘의 아들(天帝之子)"이라고 하였다. 중국 황제들은 스스로를 천자라 하고 주변 국가는 천자의 신하라 해서 천자라는 단어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다. 하지만 고구려는 당당하게 천제지자라 하였다. 
만약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면 이것은 반역행위가 되는것이다. 즉 광개토대왕비야말로 고구려가 강하고 독립된 자주 국가였음을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물인것이다. 


반박3)독자적인 연호사용
고구려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영락 : 광개토대왕비
연가 :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영강 : 영강7년
건흥 : 건흥5년명 석가삼존불광배

오히려 고려, 조선에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 못했고,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이 들어서고 나서 처음 연호를 사용하였다.


반박4)고구려는 하늘에 제사지냈다.
 
고구려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그것을 동맹이라 하였다.
동맹: 고구려에서 매년 10월 모여 국정을 의논하고 가진 제천의식

고구려는 나라 동쪽에 큰 굴이 있어(國東大穴) 거기서 신을 받아 제사지낸다. 그리고 10월마다 하늘에 제사지낸다.  -중국사서-

중국은 자기만 하늘의 아들이라 하고 하늘에 제사지낼 수 있다고 규정했다. 주변 제후국은 제후국의 부모인 종묘(宗廟)와 땅과 농사의 신인 사직(社稷)에만 제사 지내도록 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예기-

고구려가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것은 그만큼 독자적인 천하관을 유지했다는것을 뜻하며, 하늘에 제사지내는 나라는 절대 지방정권일 수 없다


반박5)고구려때 중국역사

고구려 28대 705년(BC37년~AD668년)- 한(234년): 서한, 신, 동한
                                                     삼국시대(60년): 위,촉,오
                                                     진(153년): 서진, 동진
                                                     5호16국(137년): 5개 북방민족의 16개국
                                                     남북조시대(169년): 남조(송, 제, 양, 진)
                                                                                 북조(북방민족)
                                                     수(38년)
                                                     당(50년)

고구려의 긴 역사와 동시대 중국나라들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보다 쉽게 왜 고구려가 중국의 나라가 아닌지 답이 나온다.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지방정권의 하나로 주장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세상 어느 나라에서 지방정권은 705년 가는데 지방도시를 임명한 나라가 수십차례 바뀌는 난리법석을 떨며 혼란을 겪는단 말인가. 그나마 이시기의 절반은 중국의 한족이 아닌 북방 이만족 지배하였고, 특히 북방은 중국사라 할 수 없다.



3.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고구려인은 중국에 흡수되지 않았다. 서길수 교수님이 이런 물음을 들었을때 과연 중국이란 나라가 그때 있었던가 하고 반문하셨다 한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줄인말이다. 청나라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세워졌다가 오랜 내전끝에 공산당의 승리로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선포하였다. 즉 중국이란 나라는 1949년 10월 1일 생긴 나라이다.

고구려 멸망후 고구려땅에 세워진 나라들을 살펴보겠다.
 국가  민족
 발해(699~926, 228년)   발해족(고구려후예)
 요(907~1125, 210년)   거란
 금(1115~1234, 120년)  여진족(발해의 후예)
 원(1206~1368, 109년)  몽골
 명(1368~1662, 294년)  명+여진
 청(1616~1911, 297년)  만주족(여진의 후예)
 일본, 러시아의 진출(1911~)  실질적 권력행사
 만주국(1932~1945, 13년)  만주족

 이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고구려 멸망후 중국의 한족이 제대로 중국의 동북지역을 지배한 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어떻게 고구려가 멸망후 고구려인이 중국에 속하게 되었단 말인가. 단지 멸망한 고구려 유민들은 계속 그곳에서 살았을 뿐이다.


-중국의 주장에 대한 복습시간-
중국이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3가지 이다.
1. 고구려는 중국땅에 세워졌다.
2.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도지사 개념)
3.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에필로그
중국에서 이제 먹고 살만하니 슬슬 영토확장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이라는 황당한 논리개발로 멀쩡한 한국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 우기고 있는 꼴이 한심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따라서, 지금까지 정리하였던 몇가지 중국인이 주장하는 논점에 대한 반박내용을 머리속에 넣고 이제 중국에서 아무리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라고 역사 침탈을 해도 우리는 논리적이면서 명확한 증거를 친절히 알려주며 억지를 부리는 떼쟁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도록 합시다. 독도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자랑스러운 '고구려'란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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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주국은 존재하지 않는나라. 2009.03.29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주국은 일본이 만주지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름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 역사 도둑놈들 2009.03.29 0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중에 도둑놈의 시다바리들이 있네

  • 누가 뭐라해도 2009.03.29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가 뭐라캐도 중국역사여............니들이 아무리 피때 세운들 .....
    니들은 뭐낙 노예새퀴들이야....
    주물러 줘야 좋아서 하~~악 ,하~악 대는 인간들이잖어....

  • 만주를 먹어버리자 2009.03.29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주를 아예 먹어버리자. 북한 흡수해서 만주 먹고 산둥반도와 요서지방도 되찾자.

  • 태극소년 2009.03.29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구려는 우리 역사다. 짱깨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우리 꺼다. 진실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다. 지금 위에 친중파 놈들아. 그렇게 중국이 좋으면 중국가서 지네나 먹고 살아라.
    자기 나라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르는 놈들은 쓰레기다.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함부로 못하는 이유가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1위인 한국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그렇게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는게 우리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있고 고구려의 후예라는 역사가 있기에 그런 건데 그딴식으로 우리역사가 짱깨 꺼라고 하는 놈은 이 나라에 있을 가치가 없다. 지금 여권 들고 중국으로 빨리 날라라. 그리고 누구에게 한국인이라고 하지 마라. 니들은 스스로 한국인이 되길 포기했으니까 그냥 떠돌이 국적도 없는 놈들이 되는 것이다. 일본이 좋으면 일본가서 일본개잡놈 새끼들 똥꾸멍이나 빨아라.

  • 통일소년 2009.03.29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우리에게 한시라도 급한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저지하고 빨리 북한과 관계를 좋게 개선해서 통일을 하고 간도의 조선족자치구도 흡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육로로의 교통을 확대해 철로를 만들어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쩌면 미국을 넘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근데 통일은 커녕 이제껏 노무현 김대중 두 대통령이 엄청난 돈을 들여 성공한 남북 관계를 이명박 현 대통령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뿐아니라 더 악화시키고 있다. 대략 60조의 돈을 들여 만든 남북 관계를 한 순간에 무위로 되돌려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든 것이다. 그 비용이 아무리 많았다고 해도 전쟁으로 인한 피해보다는 훨씬 싸다. 경제 대통령이라면 경제를 살리는 데에만 힘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바라는 것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 대통령이 잘못된 정책을 한다는 건 아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솔선수범을 보이며 애쓰는 모습은 좋다. 하지만 너무 그것에만 신경쓰다 보니 다른 것에 좀 소홀한 것 같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절실히 원하는 걸 해주었을 때 지도자를 진심으로 잘 따르는 법이다. 이점을 수용해 주었으면 한다.

  • Favicon of https://ssroo.tistory.com BlogIcon Blue Whalee 2009.03.29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논리적인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근데 댓글중에
    정말 개념을 밥말아 드신 분이 있는거 같아서
    참 안타깝네요
    그렇다고 제가 개념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오해는 마시고..

    고구려와 중국역사 얘기 하는데
    천왕이 왜 나오는지..-_-; 쩝..

    어쨋든 잘 보고 갑니다^^

  • dfaef 2009.03.29 2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너무 안타깝습니다 ㅜ.ㅜ

  • hitechitec 2009.04.01 0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구려가 중국거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도 중국역사고, 고려의 영어발음 KOREA(코리아), 한국도 중국땅?
    중국놈들 어거지가 심하군...
    중앙정권이 수십번을 교체하는 사이, 지방정권은 그대로인 나라도 있더냐!
    자체 연호 쓰는 지방정권도 있더냐!
    중국에 고구려처럼 온돌문화가 있나?

  • 지리학박사 2009.04.08 0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중국"이라는 지명을 1949년에 쓰여진 것이란 말은 아주 훌륭한 업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지리학자나 역사학자 그 누구가 "중국"이라는 것을 1949년 이후의 지나 대륙을 지칭한다고 딱 잘라 말합니까? 이게 바로 우리 역사의 문제점의 하나입니다.
    도올 김용옥의 논어집주라는 책을 보십시오. "중국" 문명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자가 살아있을 당시에 "중국"이라는 지명이 없었다고 해도 아무리 지리학박사인 제가 여러 한국의 지리학 교수들과 역사학 교수들에게 말해도 믿어주질 않습니다. 김용옥 박사의 논어집주를 읽어보십시오. 박영효가 조선 통신수신사로 왜로 갈 때 처음 들었던 '일본'이라는 지명이 마구 쓰여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왜"라는 지명으로 쓰여던 그 곳이 "일본"이라고 마구 씁니다. 즉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지명이 고려 조선 시대에 쓰여지는 꼴입니다.
    그럼 다시 이런 이야기를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나랏말쌈이 중국에 달아... (주석) 중국에 황제 계신..." 이라는 훈민정음 운해 서문을 말입니다. 아직도 고등학교에서는 "중국의 황제가 남의 나라(조선) 사람들의 발음이 달라 애달파..."라고 하면서 역사 왜곡을 당연히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의문이 드셔야 합니다. 왜 남의 나라 황제가 남의 나라 말에 대하여 그렇게 고민하는 지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 말대로 중국이라는 지명이 당시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럼 그 중국은 무슨 뜻인가를 말입니다. 즉 중국은 '나라 가운데'라는 우리 말이며, 나라 안에 황제 (세종) 께서 나라가 얼마나 컸기에 백성들의 말이 그렇게 달라 글자 (한자)와 서로 맞지 않아 고민했다... 라는 뜻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믿기질 않겠지만 "명사"라는 중국 역사서를 보십시오. 특히 "만력의 역"에 대한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임진왜란이 실제로 벌여진 곳이 어디 인지 한 번 보십시오. 또한 선조실록을 보아도 왜란시 등장하는 지명의 반 이상이 중국 대륙의 양자강 일대이며 지금도 그 지명이 상당수 남아 있습니다. 제가 박사 되기 전해 머리 싸매고 다 조사한 내용 입니다.
    이렇게 공부하고 나름대로 밝혔더니 저보고 나의 지도 교수나 심사 교수들이 "미쳤다"라고 합디다. 모든 증거와 역사서를 다 보여주었는데도 미쳤다고 하면서 졸업시켜 줄 수 없다고 합디다.
    소위 우리 역사의 삼국 시대에 등장하는 지나대륙의 모든 국가들은 소위 "제후국"들입니다. 즉 누구에 대한 (천자나 왕이라는 국가가 있어야 존재하는 국가들입니다) 제후라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조잡하게 공부하시지 말고 저처럼 한 십년간 완전히 미친 듯이 중국의 사서나 우리 역사서를 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지리학박사2 2009.04.08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때 한 백년 전에 독일의 유명한 지리학자가 실크로드를 탐방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크의 어원은 "신라어"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독일 지리학자가 마치 오늘날 한반도로 온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여 어떤 역사지리 교수가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떤 대학생이 실제 그 독일 지리학자의 여정을 그린 지도를 보이면서 그 지리학자가 실크에 대한 어원을 조사할 당시에 지나 대륙 천산 남로 근처에서 했으며 한 번도 한반도와는 관련없다 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대학생 그 강의 디이 받았으며 교수라는 직위의 막대한 권한 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한 때 지나대륙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어느 도시가 한반도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 다라니경의 종이가 그 도시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한 20년 전에). 그러나 한국에 있던 버러지 같던 역사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중국의 그 도시까지 찾아가 "이런 개같은 짱개들아 그런 역사 왜곡을 중단하라"고 진짜 시위까지 벌였다고 합디다. 그리고 케이비이에스인가 이비에스인가 당시 굴지의 역사 탐방 방송에서 이 것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오묘한 것은 중국의 그 도시의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우리 나라 굴지의 방송이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 돈 쓰면서 그 중국 도시의 중국인 교수들과 학자들의 주장을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즉 한 때 그 도시가 신라의 수도 였다는 엉뚱한 주장 이었습니다.
    이 "신라"라는 말이 문제입니다. 즉 오늘날 "차이나"라고 영어식으로 발음되는 것은 실제로 서반어식으로 표현하면 (즉 라틴 계열의 언어를 표현하자면), "신나"가 된다고 합니다. 즉 오늘날 중국이라고 하는 곳이 바로 "신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왕건으로 인하여 "고려"라는 것을 우리의 또다른 국호로 달고 살듯이 조선이 신라를 기원으로 했던 여진족에게 대륙에서 쫓겨난 이후에 '신라, 신나'가 대륙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고려라는 국가가 원래 대륙의 천자국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고려가 없이는 신라의 역사 또한 없기 때문에 중국이 저렇게 다시 자신들의 천손족 국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 지리학박사3 2009.04.08 0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케이비에스 아침방송 중의 기막힌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당시 그 취재 여자가 상당히 관심이 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실제로 한반도에서 방송된 그 사건 이후에 그 여자의 정신나간 말에 그만 관심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즉 중국의 어느 북경 근처의 마을에서 벌여진 일입니다.
    그 곳이 바로 "밀성 박씨" 씨족 마을이라는 것입니다. 밀성 또는 밀양 박씨는 아주 중요한 성씨 중의 하나입니다. 이들의 족보를 보면 시작 자체가 "복희씨"와 "소호금천씨" 입니다. 그리고 거의 일만년을 거론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아리따운 아나운서가 어느 중국인에게 묻는 것입니다.
    "언제 부터 밀양 박씨가 여기서 살았는가요?"
    번역 후...
    "우리도 잘 모릅니다. 너무 오래되어서요..."
    그러자 한국에서 미친듯이 간 그 여자 기자가 다시 묻는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으면 혹시 일제시대 때 일제로 부터 쫓겨 도망온 조선족 아닙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그 중국인이 약간 얼굴을 찡그리고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 한 표정),
    "이 동네가 생긴 것은 저기 저 소나무 숲 보다 더 오래 되며 언제 생긴지도 모를 정도로 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또다시 한국에서 온 미친 년이 다시 따지듯 묻는 것이다.
    "아니 얼마나 고생했으면 자기 자신을 잊을 만큼 일제에게서 학대를 받았을 까요? 당신은 조선족입니다."
    그 중국인 그 미친 년을 보더니 (어의를 상실한 듯한 표정)...
    "여기는 제국군(일제 군대)도 성스럽게 여겨서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지나간 곳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왜 오늘날 중국인들이 그렇게 고구려의 역사를 찾으려 하고 있으며 얼마나 한국이라는 곳이 저렇게 정신이 마구 나간 개털 여자들이 판을 치는 곳인가를 확실하게 아셨을 것입니다.
    이게 우리 대한민국 역사 수준입니다.

  • 지리학박사4 2009.04.08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선덕대왕 신종" 즉 "에밀레 종"을 한 번이라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종의 웅장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디테일에 들어가서도 그 현묘찬란한 정신세계의 표현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아십니까?
    어느날 한 때 돈 많은 어느 왜놈이 신라의 어느 "시냇가"에 굴러다니는 것을 거의 1500년 동안 대한민국 사람이나 조선 사람이나 고려 사람이나 심지어 신라 사람도 몰랐다가 자랑스ㄹ런 "왜"놈에게 발견되었다고 이 선덕대왕 신종의 발견사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얼마나 개쪽인지 당신은 얼굴에 피눈물이 나올 지경이 되어야만 합니다. 아니 모든 대한민국에서 선덕대왕 신종을 만든 사람들을 조상으로 여기는 자들은 모두가 다 거시기를 잡고 반성해야 된단 말입니다.

    또한 북한산 순수비도 당신은 아실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어느 왜놈 잡놈이 상하이 (상해) 골동품 상에서 구입하여 오늘날 서울 북한산에 세웠다고 어떻게 북한산 순수비가 세워 졌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북한산 순수비의 돌뺑이가 화강암 계통인데 우리 나라 어디에도 비슷한 것 조차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십니까? 또한 상해 그 골동품상은 일제 시대 때 중국 대륙에서 유물을 조직적으로 뺴돌리는 거점의 하나 (여러 곳이 일제의 공식 자금으로 운용되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하루에만 약 4만점의 중국 대륙에서 모여진 역사유물이 일제의 여러곳으로 분산 배치 되었다고 합니다)였으며 이 골동품상의 주요 지역이 오늘날 산서지역과 그 주위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있는 화강암이 바로 북한산 순수비와 똑같은 구성비를 자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북한산 순수비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모든 최신 역사책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 있는데 바로 "창녕 진흥황 순수비"입니다. 왜냐하면 창녕 진흥왕 순수비와 북한산 순수비가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돌맹이 다루던 신라 장인들에게 지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북한산 순수비의 비문은 글자를 전혀 알아보기 힘들 정도인데 비해 이 창녕 순수비는 글자가 너무나 명확하고 문제는 똘뺑이가 전혀 달랐단 말입니다. 그래서 아예 순수비의 사진까지 완전히 없애 버렸단 말이요.... 이 창녕 순수비도 왜놈들이 가져다 주었는데 뭣도 모르는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뭐나게 자기가 발견한 것 처럼 돈 타먹고 놀고 자빠졌다가 나중에 신중에게 문제가 제기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숨겨 버렸단 말이요.

  • 지리학박사5 2009.04.08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동북공정을 하는 가라고 미국으로 유학을 온 중국의 공산당원이자 역사지리학자인 저의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소상하게 밝히더군요.
    "시작은 당신 네 나라 노태우 대통령이 자신의 족보에 쓰인 기원을 밝혀주라고 하는 것과 당시에 당신네 나라 대통령이 들고온 소위 대한민국 역사와 상고사에서 출발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틀 밤을 이야기 한 그 친구와의 대화 내용은 이랬습니다.
    "고려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고려라고 말했습니다)는 너의 나라 기록에 의한 강역은 "망할 "당시의 것이다. 네가 말한 장수왕 때 "장안"에 천도한 것을 말했는데 한반도 평양에 마치 당시의 고려의 수도라고 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안"이라는 지명은 오직 "서안, 서경"이라고도 불리우는 "장안"에만 쓰인 천자국의 수도이다. 즉 고려가 당시에 천자국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고려라는 나라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노태우의 족보를 통하여 우리는 천손족 또는 천자족, 또는 선택된 족속에 대한 실마리를 알게 되었다. 우리 중국의 역사에서 지금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왕"의 나라, 천자의 나라 (왕과 천자(황제, 제)는 구별없이 쓰임)에 대한 복원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역사는 "공"이라고 불리었던 "제후국"의 역사로 "패자(패권을 쥔 사람)"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수십번 말한 것은 다음의 것이다) 차이나와 가오리(고려)는 같은 조상이며 한 오리진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북 공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동북 공정을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의 역사의 하나인 고구려를 빼앗기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을 하니까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기가 기억하는 당시 노태우가 들고간 우리 역사통사 역사부도를 기억하면서 삼국 시대의 한반도 지도를 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더군요. 자 봐라. "여기 여진이 한반도의 중간에 있으며 "해"라는 나라가 "한반도의 딱 중간"에 있지 않느냐! 그런데 여진이 한반도에서 살았다는 기록은 어디에서 없으며 이 "해"라는 나라는 천자국이었으며 황하 중류에 위치한 막강한 패자(권력을 쥔)국이었다. 무엇을 더 말해야 너희들 국사 부도라는 것이 엉터리이며 역사 왜곡은 우리 (중국)가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더군요.
    또한 이런 말도 하더군요.
    "왜 동해라는 지명을 마치 너희 나라는 옛날 신화적 황제시대부터 쓰는가? 동해는 "황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의 지명이다. 동해라는 말자체가 황제국에서 쓰이는 단어이다. 어찌 감히 엉터리로 너희들 것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가?" ...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중국의 역사지리학자가 그렇게 말하니까 죽일 놈들은 진짜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겠더군요.
    우리들은 좀 천박하고 쉽게 지랄하는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거의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아주 계획적으로 수백년을 가지고 역사를 바로 찾으려고 하더군요.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중국인으로서 왜 그런 일급비밀에 가까운 것을 나에게 말하느냐?"
    그러자
    그 똑똑한 중국인은 말하더군요.
    "나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학자들은 당신같이 올바르게 아는 자는 당신의 나라에서 핍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당신 네 나라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신 네들의 엉터리 역사책에도 얼마나 많은 예가 있는가? 중국도 또한 여러 문제가 있지만 당신들이 가진 "인물"을 키울지 모르는 못된 습성보다 훨씬 약한 편이다."라고 말하더군요.
    성실하게 공부하여 지리학 박사가 되어서 이렇게 겪은 얘기를 나의 은사와 여러 같은 과 출신 교수들 (옛날 선후배)에게 말했는데 "다시는 아는 체도" 안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 지리학박사6 2009.04.08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수십년 동안 연예도 잘 안하고 도서관에서 있는 한문으로 된 역사책이란 왜놈들것만 고고의로 뺴고는 다 읽었다고 자신한다.
    바로 "중국"에 대한 지명 문제로 인하여 나의 지도 교수와 몇 몇 역사학자,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통하여 질문을 보내었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들의 이메일을 잠궈버렸다. 그런데 압권은 어느 교수에게서 왔다.
    자기 마누라가 중학교 국어 교사인데 내가 수백개의 예시로 보내어준 '훈민정음 운해"의 서문에 대해서는 자기 마누라가 잘 안다고 하면서, "중국이라는 지명이 아주 상고시대에서 부터 쓰인 일반명사라고 다들 아는 사실이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수백 개 중에 단 하나만을 가지고 그것도 수십년을 한문으로 된 글들을 독파한 전문가에게, 대학교 졸업한 "국어 교사"를 들고서는 감히 지리학 박사의 진실된 질문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명 문제에 대하여 여러 차례 다른 것을 수백개의 한자로 된 역사책과 각종 서적을 예로 들면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곤륜산"과 "백두산"이 두 단어 중 조선 중기 이전에 어느 단어가 우리 역사책에 많이 등장할 까요? 정답은 백두산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곤륜산은 특히 소설책에서 항상 등장한다. 거의 모든 한국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산 이름이다. 물론 역사책에도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그럼 "금강산"이라는 지명은 과연 우리 역사서에 등장하는가? 즉 조선 중기 이전에 말이다. 답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금강산 가고 싶어 지랄 안달하는데 웬일인가 말이다. 한문으로 된 역사책 어디에도 금강산이 등장하지 않는다!
    "강남"... 제비 처럼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바로 그 유명한 말... 역사책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도 사실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아 글쎄 중국에서 미국으로 온 유학생들 즉 똑똑한 중국인들도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며 제비가 언제 장강의 어느 지역에서 떼를 지어 강남으로 날아가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장관이라고 한다. 하늘을 온통 제비들이 휘덮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강남성이 바로 그곳이란다. 즉 강남이라는 곳이 중국 대륙 한 복판에 등장한다.
    우랑직녀... 견우직녀라고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마치 우리 역사의 한 이야기로 자랑한다. 삼국유사에도 우랑직녀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 유학생 모두가 다 이 우랑직녀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중국 유학생들 말을 들어보면 천산 산맥 또는 곤륜산 산맥지역과 관련되며 천손족과 그 지배 속국 민간의 사랑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뭐 이렇게 여러 지명이야기를 가지고 여러 번 한국의 여러 학자들에게 의문을 보내었더니 지금은 거의 이메일을 받는 자가 없어져 버렸다.

    완전히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버렸다. 나 스스로가 만든 것인데 누구에게 한탄을 할 것인가?
    밀성 박씨의 밀양 군수를 지내신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바로 나의 외증조부의 아버지이시다. 일제시대 때 말이다. 뭐 내가 일본 쪽발이 앞잡이 출신이라고? 그래 얼마나 그 분이 일제 사람들이 알아보아서 시켰는지 당신은 아는가? 그래서 군수 자리에 한 번도 나가시지 않았지만 왜놈들은 명예라고 하면서 천황이라는 자가 봉토도 주었고 각종 선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분은 한 번도 받지 않았지만 봉토는 받는 즉시 다 조선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 분이 돌아가신 후 원래 조선족이 가졌던 버러장머리없으며 인물도 안 알아주는 것은 현재에도 계속 되고 있다. 그 분이 나의 어머니의 먼 친척에게 말씀 한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 아주 어릴 적에 그 방계 친척이 한 말이다.
    "내가 온갖 책을 다 읽고 99개의 방을 가득히 책을 쌓아 두었는데 아무도 읽는 이가 없는데 오직 너만 한 번이라도 뒤척이는 구나. 그런데 우리 대황제국이 망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거야. 그것도 또한 우리 조선인이 가진 욕됨이며 무지와 간사한 마음 때문이지. 어찌 우리의 노비들 왜놈들에게 나같은 이가 인정받는지 나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언젠가 부터 우리 조상들의 가장 나쁜 습성은 알다가도 모르게 지켜졌는데 그게 바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야. 두고 봐. 저렇게 쌓인 찬란한 우리네 정신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우리 스스로가 비천한 노예가 될 것이다."
    그 분이 죽고 난 후 새로 부임해 온 왜놈 군수가 어느날 일제 트럭을 약 십여대와 일개 중대병력을 끌고와서는 수만권이나 되었던 우리 역사서를 싣고 가 버렸다. 그의 자식들 중 아무도 총칼 앞에 무서워 자신들의 것을 약탈해 가는 왜놈들을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다. 삼일운동이 있은 후 몇 십년간 당시 밀양의 선조들은 일본놈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밀양에 재실 (제사를 지내고 각종 역사서나 족보 등이 있는 서고를 가지고 있음)들을 밤낮으로 지켰다. 그런데 1930년 어느날 왜놈들이 밀양에 있는 모든 양반들을 영남루로 강제로 끌고와 연찬을 벌이는 중에 수십 군데의 재실이 불에 타고 트럭을 동원하여 역사서를 훔치거나 가져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경우 불에 태웠다고 한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렇게 많이 쌓여 있던 역사서를 제대로 공부를 하거나 암기를 하는 전통이 사라져 항상 다시 새로 베끼고 공부하던 풍토가 사라져 다시는 누구하나 복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뭔 할아버지뻘 되는 그 분이 그렇게 똑똑하셨는데 "똑똑하면 일찍 알게 모르게 죽임을 당하게 되고 가문이 멸족 될 수 있다는" 이유 만으로, 또한 그 분 집안이 좀 빈약하다는 이유 만으로 단 한 번이라도 그 재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셨다.라고 하셨다.

    얼마나 어렵게 옛날 자료를 구하면서 내가 공부한 줄 아는가?
    이것을 그냥 간단히 웃으면서 벗어던지는 게 원래 우리 나라 국민성인 것이다.
    수천년을 이 지랄을 했기 때문에 아직도 그렇게 지랄 만 하고 사는 민족이다.

    정말이지 우리 나라 도서관에 그렇게 넘쳐나는 취업 준비생들... 돈은 다 어디에 쓰는가?
    우리 나라가 이렇다.

  • 고구려란 국명의 유래 2009.04.08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진짜 몇 년간을 "코리아"란 지명의 유래를 찾으려고 온갖 사서를 다 뒤졌다. 그리고 전혀 엉뚱할 뿐만 아니라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던 곳에서 그 "고구려"란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나중에 '이중재"라는 재야 학자와 "김종서"라는 중앙대 역사 박사이신 분에게서 확인하게 될 때까지 한국의 대학교에 있을 때 아무도 나의 발견을 확인해 주는 역사, 지리학자 교수들이 없었다.
    즉 "후한서"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고리국이 구이를 병합하면서 왕망(주몽)이 스스로 고구려왕으로 등극한다는 바로 그 부분이다. 이게 "고구려"라는 지명에 대한 제일 오래된 근거이다. 즉 왕망은 "신"이라는 나라를 세웠지만 "신"이 곧 "한"이므로 "한"나라가 바로 고구려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의 후손들이 사는 도성의 이름이 "한성"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중국인들은 고구려(고려)의 후손들의 수도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제 어느 미친 개독 서울 시장이 '대갈통을 잘라 버린다는 뜻의 '서우얼"이라는 한자명으로 수천년을 이어온 "한성"이라는 지명을 갈아치웠다.
    우리가 얼마나 얼이 나자빠져 있는지 아실 것이다.

  • 어느 교수의 질문 2009.04.08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경주로 과 전체로 답사를 간 적이 있다. 한 20년 전에... 나는 별로 관심도 없는 쪽발이 대학교 출신 지리과 교수라 멀찌기서 근성으로 따라다녔는데 신라의 계곡 (분지), 즉 오늘날 경주라고 불리는 분지가 다 보이는 산록완사면에서 내가 미기적 거리며 천천히 내려가는데 나의 팔을 잡으며 남으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학우들이나 답사 나온 학생들은 다들 버스로 갔는데 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분지를 한 번 보라고 하면서 이렇게 묻는 것이다.
    과연 "이 경주가 신라시대 때 백만명이 살았다고 너는 생각하냐?"라고 하시는 것이다.
    원래 수백만명이 한 곳에 수백년을 살면 가장 골치아픈 것이 "쓰레기"문제이다. 이것을 또 그 분이 거론하시는 것이다. 당신도 알지만 로마를 상상해 봐라. 로마가 망한 것은 "쓰레기" 때문이며 로마에서 왜 향수나는 것들이 불티나게 태워졌냐하면 바로 "쓰레기 냄새"를 누그려뜨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서양의 학자들 뿐만 아니라 동양의 학자들도 모조리 다 알고 있다. 현재 장안의 가장 큰 문제는 쓰레기를 덮은 표토의 유실로 인한 과거 쓰레기 더미가 노출될 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신라 수도가 천년을 지속되었으며 천년을 쓰레기를 마구 배출했을 것으로 본다면, 쓰레기 더미가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학술재단에서 미친 듯이 이 쓰레시 더미를 동해까지 나가면서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코 찾질 못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그 인솔 교수가 나에게 말한다. "일백만 이상인데 일백만명은 지배계층 수 이며 외국의 상인들과 같은 숫자를 말한다. 그러면 노비만 보더라도 최소한 4백만 명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원래 기록이 최대 4백만 정도 였다고 우리 나라 지지에도 적혀 있으며 지나대륙의 역사책에도 쓰여 있다. 그런데 쓰레기 더미를 찾을 수 없다."
    물론 나는 당시에 어느 정도 역사서를 독파한 뒤라 말씀을 드릴려고 하는데 그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뭐 옛날 것이 무슨 소용이여... 현재만 충실하면 되는 것인 지도 몰라." 하면서 피식 웃으시면서 터덜터덜 버스 있는 쪽으로 가시는 것이다.
    이 분이 나중에 나의 논문을 제일 거부하신 분이다.

    나중에 어떤 때에는 이 분이 이런 말도 나한테 한 적이 있다.
    "저기 말야, 황룡사 구층탑인가 하는 그 곳 말이지... 그 곳 지형이 그러한 탑이 설 수 있을 것 같아? 지짓돌 만 나왔지 그 아래 그 무거운 탑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반이 전혀 없단 말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데 말이야 신라 시대 때 황룡사와 똑같은 규모의 절을 지었고 그 곳이 분황사이고 실은 이 분황사가 더 많이 역사책과 당시 신라인들이 중요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엉터리들이 이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3층 규모의 탑도 세울 수 없는 지층을 가진 곳에 9층 탑을 논의하고 있으며 그것을 막무가내로 따르는 정신줄 나간 인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보고는 너는 그렇게 정신나간 놈이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 놓고는 "미쳤다"라고 제일 먼저 말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 백두산 문제 2009.04.08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유타대 학생회 회장이 "왕재필"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분이 자랑스럽게 "독도수호광고"를 학교 신문에 내면서 뭔가 조국 수호의 기치를 들이 밀면서 아주 매국질을 톡톡히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일전에 메탈류지 전공의 박사과정 미친 놈에게 "원래 독도는 분쟁지역이 아니며 "독도수호"라는 말은 잘못되었으며, 원래 영토에 관하여 떠드는 것은 전쟁을 각오해야 될 중요한 책임"이 같은 학교 후배인 그 정신나간 왕재수 필군에게 말했습니다. 그렇는데 미국에 사는 정신나간 동포들과 합세하여 더욱 더 "독도수호광고"를 헛돈 쓰면서 계속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계속 말했죠.
    똑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제대로 공부한 사람을 무시하는 게 한국인의 전통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말은 씨도 먹히지 않고 현재 뉴욕이고 엘에이이고 이 독도 광고 지랄판입니다.
    그런데 이 왕재수 왕재필에서 "백두산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질문을 보냈는데 전혀 답장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백두산 정상의 반은 중공이 북한을 도와준 댓가로 침탈해 갔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 씨발놈이 대답을 안하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는 전혀 "문제가 없는, 분쟁지역이 아닌" 독도를 가지고 동포들의 돈까지 동원하면서 영자 학교 신문에 선전하고 지랄 난리 빤스입니다.
    저는 이 독도 광고 때문에 일본 문부성에서 돈을 많이 주는 직업을 거의 다 되었다가 놓쳤습니다. 같은과 일본 지리학과 유학생으로 부터 추천을 받고 면접만 보면 되었는데 언젠가 부터 저보고는 아는 체도 안합니다.
    사실 바로 백두산 문제가 1970년 부터 시작합니다. 그 때 중공에서 공식적으로 북한에 백두산 정상의 반을 내어놓어라는 협박을 했고 우리 대한민국의 중앙정보국과 미국의 중앙정보국이 이런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때 부터 백두산 지역과 옛날 고구려에 대한 역사가 중요시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의 역사학계는 "고구려"라는 나라가 오늘날 동북 삼성이라는 중공이 말하는 지역에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신채호의 고구려의 위치가 만주와 관계되었다는 것이 1980년 후반에 역사학계나 지리학계에서 밝혀진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과 라는 엉뚱한 곳의 신 모씨 서울대 교수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그 신모씨 서울대 교수는 약간 똘아리라고 취급되었지요 당시에 말입니다. 즉 1990년 초까지 우리 역사계의 어느 훌륭한 학자나 교수도 공식적으로 "고구려"를 인정 안했단 말입니다.
    고구려의 한 때 만주지역 지배설과 한 때 평양 이었던 "봉천 (현재 심양)"에 대한 우리 역사계의 받아들임은 노태우가 중국으로 가져갔던 우리 국사책에 대한 중국인 학자들의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던 1990대 중반부터입니다.

    즉 우리 나라 스스로가 고구려가 만주에 있었다는 것을 주장한 것은 1990년 중반부터 입니다. 알겠습니까?
    제 말이 의심이 나면 역사학계의 여러 논문지들이 수없이 많으니 잘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뼈저리게 반성하십시오.

    과연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지 말입니다.

  • 한자로 쓰인 역사책 2009.04.08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아주 우수한 글자인 한자로 기록된 역사책을 일제때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상당수 가지고 있다. 우선 그 역사책을 다 읽은 후에 도대체 중국의 동북공정이 왜 하는지를 깨닫도록 하자. 우리는 한자로 된 기록물을 읽는 수준이 말이 되지 않도록 저급이다. 내가 영어로 영어로 된 논문으로 박사를 받았지만 나처럼 한자를 공부하고 나처럼 많은 중국과 한국의 사서를 독파한 역사계 지리학계 학자나 교수들을 만난 적이 없다. 또한 이 글을 발제한 분 또한 진실로 한자로 된 역사책을 읽었는지 의심이 된다.
    원래 읽지 않고 심각하게 수십년간 생각하지 않고 말한 다면 나중의 낭패가 어떻겠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언제나 우리 조상들이 남기신 한자로 된 글에 다 나오는 말이다.
    그토록 투철하게 기록을 하신 우리 조상들을 욕보이는 일이 오늘날 그들의 자랑스러운 후손들이 떳떳하게 하고 있다. 즉 읽지를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한자로 된 역사책 중국 것이든 한국 것이든 다 읽고 또한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자기들의 역사적 의미를 적은 논문 (현재 약 1만 정도 된다고 들었음, 20년 전에는 보고서 달랑 2개 였는데)과 대한민국의 일본 논문을 빼기는 역사 논문을 일본 원전을 보면서 어떻게 일본이 적은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는가를 완전히 이해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제가 20년 전에 할 때 10년 걸렸는데 지금 시작하신다면 최소한 30년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부란 게 원래 그런 것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가 반만년이라면서요. 각오를 단단히 하시고 신나게 한자로 된 우리 역사서와 중국의 역사서 부터 읽어보시지요. 남이 당신을 보고 뭐라고 하던 줄기차게 읽어나가 보십시오. 언젠가는 자랑스런 한인이 무엇인가를 당신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며 온갖 거짓이 범람하는 헛된 역사 속에서 진리, 진실이라는 보물을 스스로 캘 수 있을 것입니다.

  • 2009.05.14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