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동안 제가 맡은 시골초등학교 학급엔 다양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한눈에 보더라도 재력있는 부모를 둬 영양과잉의 티가 팍팍 나는 '한나'라고 불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일 뿐인데 벌써 사춘기에 접어든 듯 안하무인입니다. 이미 전교에서 가장 키가 크고 덩치도 성인의 체중을 넘어섰습니다. 한눈에 봐도 남부럽지 않게 커 온 아이라는 것을 학기초부터 알 수 있게 됩니다. 가정조사란에서 확인한 부모의 직업은 법조인과 언론인이시더군요. 그들의 우량(?) 유전자를 고루 물려 받아 '주먹'과 '말빨'은 이미 전교를 평정했습니다. 그나마 공손한 '친박'이라는 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무가내 철없고 버릇 없습니다. 옹야옹야 남아선호 사상의 뼈대있는 집에서 애지중지 자라온 3대독자라 이기적이고 독불장군입니다. 공경과 예의로 존경해야 마땅할 학교 선생님조차 무시하고 덤벼들기  일수입니다. 육성회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잘난 부모덕에 선생님들조차 아이에게 꺼꾸로 비위를 맞춰왔습니다. 하물며, 같은 반 학우들께는 어떻겠습니까? 원하는 건 어떤 식으로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니 아이들에겐 영원한 폭군으로 비춰집니다.

그에 반해 어린 나이에 일찍 조실부모하여 젊름발이 할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생활해 온 '민주'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을 잘듣고 남을 도우며 급우와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민주는 많은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민주의 딱한 가정상황을 알게된 선생님들은 비록 보잘것 없이 비실비실한 몸매에 남루한 행색의 외모지만 학교에서는 가장 선생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는 착한 아이로 기억했기에 아이의 장래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습니다. 덩치도 반평균에 비해 작고 키도 고만고만한 아이, 이른 나이에 부모를 여윈 탓인지 반아이들에 비해 항상 의기소침하고 조용합니다. 하지만, 비록 가진 것 없어 초라했지만 이 험한 세상을 이겨 나가야 할 무기는 '정의라는 마지막 자존심'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셨던 할아버지라는 버팀목이 계셨기에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함께 계실 줄 알았던 할아버지마져 자연의 법리에 따라 올해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더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 민주, 세상에 정말 나홀로 남겨진 민주는 이제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두려움에 떨던 '민주'는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항상 눈에 독기를 품고 다녔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힘쎄고 큰아이가 먼저 공격하기 전에 죽기살기로 덤볐습니다. 세상을 모두 적으로 인식한 듯 갑자기 폭주하는 민주의 모습에 선생님들은 어쩔 줄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저학년 시절, 공교롭게도 한나와 민주는 역시 같은 반이었습니다. 덩치와 힘으로 제압하는 한나에 말과 정의로 맞서던 민주의 싸움은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물론, 힘이 지배하는 세상의 법칙이 언제나 작용하여 매일 쥐어터져 울고 돌아오는 것은 힘약한 민주였습니다. 하지만, 민주의 이유있는 싸움을 지켜보는 선생님들과 학우들은 서서히 마음속으로 민주를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펜은 무기보다 강하다'는 말이 실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맞고 돌아와 울고 있는 아이를 무릎에 앉힌 할아버지는 우는 손자를 달래며 따뜻한 손으로 보듬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신비한 약손으로 어루만져진 아픈 상처는 이내 사라집니다. 언제나 그렇듯 다음날이면 아무일 없었던 양 활짝 웃는 얼굴로 학교로 향합니다. 

그런데 어느땐가, 언제나 당하기만 했던 약한 민주가 한나의 콧등을 힘차게 때려버렸습니다. 산만한 덩치의 한나도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의 아이인지라, 흘러나오는 코피를 보며 울며불며 야단입니다. 육성회장인 한나의 모친이 헐레벌떡 달려와 교장실과 교무실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같이 싸운 아이중 민주만 교무실에 따로 불려가 야단맞고 반성을 강요당합니다. 뒤늦게 절뚝거리는 다리를 끓고 힘겹게 도착한 민주의 할아버지는 말한마디 못한 채 연방 '죄송합니다'만 뇌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어느날 민주가 변했습니다. '깡과 악'만으로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나 봅니다. 제대로된 싸움조차 하지 못한 채 먼저 울기만 합니다. 

지금까지가 4년동안 매일 반복되었던 시끌벅쩍한 제가 근무하던 시골학교의 모습었습니다. 한나와 민주라는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았던 담임선생으로 두아이의 인성교육이 걱정되어 밤잠 설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과 권력의 배경으로 길들여져 힘과 무력을 남용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버린 '한나'라는 아이와 '돈과 권력'의 거대한 힘을 어린나이부터 깨달아 버리고 지레짐작으로 대응을 포기하고 울며 생떼만쓰는 아이때문입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입학식 넓은 교정에서 이름표를 단 두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전인교육의 기치하에 미래의 훌륭한 재목으로 키우기 위해 남다른 포부를 가졌습니다. 순백의 도화지처럼 맑은 영혼에 피와 살이 되는 소중한 것들로만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개 선생이 사회현상 전체를 거스를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고 있습니다. 자포자기한 채 생떼만 쓰며 울기부터 시작하는 아이로 자라나게 된 민주를 보며 선생이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밀려 옵니다. 전교생 모두가 벌벌떨며 무서워 하는 '한나'에게 매일 쥐어 터지면서도 싸움닭처럼 제대로 덤벼들던 그때시절의 '민주'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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