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동북공정을 하기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역사서(교과서)에는  고구려를 다 한국의 역사로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압록강 두만강 백두산 지역의 국경과 관련해서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하였고 이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역사왜곡 논쟁이 불거졌습니다.

필자가 2006년 대학원에 다닐때 중국인 교수와 스터디 모임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터디 진행중 자유토론 시간때 학생중 한명이 교수님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흥분해서 질문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교수님왈 "사실 중국인들은 거기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아예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단지 징기스칸이 중국의 역사이듯이(몽골사람들이 들으면 뒷통수 잡고 쓰러지겠다.) 지금 중국땅에 고구려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역사로 보는것도 틀린말은 아닌것 같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적은 없다."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때 우리들은 뭔가 시원스럽게 반박을 하고 싶은데 부끄럽지만 딱히 아는게 없어서 논리적인 답변을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가슴에 걸립니다.

당시 동북공정이 불거졌을때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흥분을 했었죠. 당시 고구려 발해 관련 드라마들이 많이 만들어 졌고 인기리에 방송되었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았는지 알수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드라마를 만들고 보는것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선 싸움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몇가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도 동북공정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어진 상태에서 우연히 고구려 연구회 이사장이신 서길수 교수님이 강의한 <역사특강 숨은그림찾기 : 고구려X파일>이란 프로를 보고 다시한번 우리 고대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는 증거를 알았으면 하면 바람으로 서길수 교수님의 강의를 바탕으로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동북공정(2002.2~2007.1)은 중국이 동북지역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장에 관한 역사프로젝트이다. 실제 중국은 이 기간에 중국땅에 있는 고구려 성, 고구려 유적지에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안내판을 다 세워놓았다.

-중국의 주장-
중국이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3가지 이다.

1. 고구려는 중국땅에 세워졌다.
2.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도지사 개념)
3.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왜 중국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사실인지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답변을 제공한다


1. 고구려는 중국땅에 세워졌다?

중국의 주장: 고구려가 한나라 현토군 땅에 세워졌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역사다

반박1)추모(주몽)이 세운 고구려국은 한나라 현토군 아래있던 고구려현과는 다른 국가였다.
현토군에 고구려현이 있었던것은 사실이나 주몽은 졸본부여에 고구려를 세웠다. (다른곳)
 
주몽은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그)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  인 것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삼국사기-

시조 추모왕(주몽)께서 처음으로 기틀을 세우셨다...비류곡(沸流谷)홀본(忽本)(졸본) 서쪽에서 산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 -광개토대왕비-

유리왕이 오이와 마리에게 병하여 군사 2만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양맥을 쳐서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진군하여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공격해서 차지하였다. -삼국사기-


반박2)"중국이 주장하는 현토군의 고구려현은 중국땅이 아니라 옛조선(古朝鮮)의 땅이다."라며 설명해도 무조건 우기는 중국인이 반응: 옛조선? 그것도 중국역사다. 그 증거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도 여기에 대해서 명쾌하게 반격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 중국의 고대역사서인 '사서'에 기자가 은나라의 도하가 다했으므로 조선을 도망갔다. 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 말인즉 조선이란 나라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 기자가 도망 갔을것이 이치가 맞지 않는가! 즉 기자가 조선에서 왕을 했다해서 조선이 중국역사가 되는것은 아니다. 이문제는 마치 후지모리(페루 출신의 일본계 이민2세. 1990년에 페루 대통령에 당선)가 페루 대통령이 되었다고 페루가 일본역사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2.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
 이 문제는 조공과 책봉과 관련된 문제인데 그렇다면 신라, 백제, 왜, 돌궐, 월남등 주변 국가들도 중국의 지방정권이란 말인가. 사실 고구려가 중국에 가장 조공을 많이 했던 왕은 장수왕으로 장수왕때 고구려는 가장 막강했을 때이다. 이것을 단지 조공 문제로 볼게 아니라 외교문제로 봐야 할것이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을 비롯해 육지와 바다에서 도합 20개국과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다.)

반박1)중국의 역사기록 - 해동삼국(海東三國: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의 옜날 사서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해동삼국이라고 해서 한국사로 인정했다.

(당나라 고종이 말했다) 해동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은 개국한지가 오래됐고 국경이 나란히 있어 땅이 마치 개 이빨처럼 생겼다.  -구당서 열전 백제국-

(당나라)고종은 이미 해동삼국이 오래전부터 원한이 맺혀 서로 번갈아 가며 공격을 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구당서 열전 신라국-

한국의 역사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 고구려본기, 백제본기, 신라본기가 기록되어있다. 중국의 그 어떤 역사서에도 고구려본기가 없다는 것만 봐도 고구려는 명백히 한국의 역사이다.

반박2)광개토대왕비
현재 광개토대왕비는 중국이 방탄유리를 씌우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이유는 광개토대왕비가 고구려가 중국역사라는 완벽한 증거인데 유랑민족(한민족)이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며 폭파시킬 위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호 감시중이라고 우긴다. 중국인들이 광개토대왕비가 중국역사라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한자로 쓰여졌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영어로 쓰여진것은 다 영국역사인가? 터무니없는 말이다.

414년 고구려때 세운 광개토대왕비에는 시조 추모(주몽)은 "하늘의 아들(天帝之子)"이라고 하였다. 중국 황제들은 스스로를 천자라 하고 주변 국가는 천자의 신하라 해서 천자라는 단어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다. 하지만 고구려는 당당하게 천제지자라 하였다. 
만약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면 이것은 반역행위가 되는것이다. 즉 광개토대왕비야말로 고구려가 강하고 독립된 자주 국가였음을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물인것이다. 


반박3)독자적인 연호사용
고구려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영락 : 광개토대왕비
연가 :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영강 : 영강7년
건흥 : 건흥5년명 석가삼존불광배

오히려 고려, 조선에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 못했고,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이 들어서고 나서 처음 연호를 사용하였다.


반박4)고구려는 하늘에 제사지냈다.
 
고구려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그것을 동맹이라 하였다.
동맹: 고구려에서 매년 10월 모여 국정을 의논하고 가진 제천의식

고구려는 나라 동쪽에 큰 굴이 있어(國東大穴) 거기서 신을 받아 제사지낸다. 그리고 10월마다 하늘에 제사지낸다.  -중국사서-

중국은 자기만 하늘의 아들이라 하고 하늘에 제사지낼 수 있다고 규정했다. 주변 제후국은 제후국의 부모인 종묘(宗廟)와 땅과 농사의 신인 사직(社稷)에만 제사 지내도록 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예기-

고구려가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것은 그만큼 독자적인 천하관을 유지했다는것을 뜻하며, 하늘에 제사지내는 나라는 절대 지방정권일 수 없다


반박5)고구려때 중국역사

고구려 28대 705년(BC37년~AD668년)- 한(234년): 서한, 신, 동한
                                                     삼국시대(60년): 위,촉,오
                                                     진(153년): 서진, 동진
                                                     5호16국(137년): 5개 북방민족의 16개국
                                                     남북조시대(169년): 남조(송, 제, 양, 진)
                                                                                 북조(북방민족)
                                                     수(38년)
                                                     당(50년)

고구려의 긴 역사와 동시대 중국나라들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보다 쉽게 왜 고구려가 중국의 나라가 아닌지 답이 나온다.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지방정권의 하나로 주장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세상 어느 나라에서 지방정권은 705년 가는데 지방도시를 임명한 나라가 수십차례 바뀌는 난리법석을 떨며 혼란을 겪는단 말인가. 그나마 이시기의 절반은 중국의 한족이 아닌 북방 이만족 지배하였고, 특히 북방은 중국사라 할 수 없다.



3.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고구려인은 중국에 흡수되지 않았다. 서길수 교수님이 이런 물음을 들었을때 과연 중국이란 나라가 그때 있었던가 하고 반문하셨다 한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줄인말이다. 청나라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세워졌다가 오랜 내전끝에 공산당의 승리로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선포하였다. 즉 중국이란 나라는 1949년 10월 1일 생긴 나라이다.

고구려 멸망후 고구려땅에 세워진 나라들을 살펴보겠다.
 국가  민족
 발해(699~926, 228년)   발해족(고구려후예)
 요(907~1125, 210년)   거란
 금(1115~1234, 120년)  여진족(발해의 후예)
 원(1206~1368, 109년)  몽골
 명(1368~1662, 294년)  명+여진
 청(1616~1911, 297년)  만주족(여진의 후예)
 일본, 러시아의 진출(1911~)  실질적 권력행사
 만주국(1932~1945, 13년)  만주족

 이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고구려 멸망후 중국의 한족이 제대로 중국의 동북지역을 지배한 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어떻게 고구려가 멸망후 고구려인이 중국에 속하게 되었단 말인가. 단지 멸망한 고구려 유민들은 계속 그곳에서 살았을 뿐이다.


-중국의 주장에 대한 복습시간-
중국이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3가지 이다.
1. 고구려는 중국땅에 세워졌다.
2.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도지사 개념)
3.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에필로그
중국에서 이제 먹고 살만하니 슬슬 영토확장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이라는 황당한 논리개발로 멀쩡한 한국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 우기고 있는 꼴이 한심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따라서, 지금까지 정리하였던 몇가지 중국인이 주장하는 논점에 대한 반박내용을 머리속에 넣고 이제 중국에서 아무리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라고 역사 침탈을 해도 우리는 논리적이면서 명확한 증거를 친절히 알려주며 억지를 부리는 떼쟁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도록 합시다. 독도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자랑스러운 '고구려'란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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